정쟁만 거듭하다 '정인이법' 폐기될 위기…"이번엔 빠른 입법 논의해야"

2024-01-11 10:03
21대 국회의원 임기 끝나기까지 '140일'
아동 전문가 "시대 따라 미성년 자녀 권리 강화해야"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논의 못해

지난해 4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떠올리는 한 시민 [사진=연합뉴스]

'정인이 사건'(2020년 10월 양부모의 입양아 학대·살해 사건)의 후속 법안이 국회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여야가 학대 아동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학대 당한 자녀가 직접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있도록 한 정부의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안 입법공청회가 지난 10일 열렸다. 2022년 11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2개월 만이다. 이 개정안은 법무부와 대법원이 만들고 2022년 5월 어린이날에 맞춰 입법예고한 뒤 국회에 넘긴 ‘정인이 사건’ 후속법안이었다.

그런데 해당 법안은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오래 방치돼 오다 폐기될 위기에 놓여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 불과 140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안과 비슷한 취지의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폐기된 적 있다.

이 법안은 1990년 가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32년 만에 나온 전부 개정안이다. 양육 관련 소송에서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게 핵심이다. 특히 부모가 학대 등 친권을 남용하는 경우 미성년 자녀가 직접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학대 자녀가 친권 상실을 청구하려면 학대 가해자인 부모와 가까운 친척을 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해 절차상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법원이 친권자 또는 양육권자를 지정하는 재판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미성년 자녀의 진술을 의무 청취하도록 하고, 양육비 지급 명령을 받은 사람이 30일 이내 안 줄 경우 감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가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아동 인권 현장 및 법조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의원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법 개정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미성년자가 절차 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며 “UN 아동권리협약이 오래전부터 요구해 온 바이고, 다른 나라의 선진입법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실현된 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 1부장도 “미성년자의 생계와 복리에 직접 관련되는 양육비 이행확보 수단을 강화한 가사소송법 개정안은 양육비 지급 불이행으로 고통받는 미성년자와 한부모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국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여야가 정쟁만 거듭하다 보니 이런 무쟁점 법안은 가장 뒷전에 밀렸다”며 “아동은 투표권도 없는데 국회의원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었겠나”고 지적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많은 여야 의원이 지각하거나 자주 자리를 비웠다. 법사위 1소위원(민주당 소병철·권칠승·박용진·박주민·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유상범·장동혁·정점식 의원)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공청회를 주재한 소병철 1소위원장과 유상범·이탄희 의원 등 세 사람뿐이었다. 

여야는 20대 국회에서 2018년 대법원 가사소송법 개정위가 27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한 개정안을 공청회를 포함해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한 바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미 한차례 처참히 폐기됐던 만큼 이번 21대 국회에서만큼은 빠른 입법 논의를 기대했는데 인제야 논의를 시작한다는 게 안타깝다. 이번만큼은 또다시 폐기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