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클론을 넘어 아트테이너로…구준엽의 도전
2024-01-24 09:50
그룹 클론으로 글로벌적인 인기를 얻었던 구준엽. 그는 1990년대 초 현진영의 백댄서 와와로 활동했으며 1993년에는 현진영의 히트곡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작곡한 탁2준2를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부터는 강원래와 함께 클론이라는 댄스 그룹을 결성해서 쿵따리 샤바라, 배신, 빙빙빙, 돌아와 등의 곡으로 한국과 대만에서 튼 인기를 얻었다. 클론의 전성기 당시 대만에서의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나서 국빈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는 가수를 넘어 아트테이너로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대만에서 국빈 대접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던 그의 찬란한 전성기를 지나 화가로서 한걸음 성장하고 있는 구준엽과 음악, 그림, 그리고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 중이다. 최근엔 어떻게 지내고 있나?
-타이베이 국제 아트 페어 30주년에 아티스트로서 참여하여 회화작품과 영상 콜라보 작품을 선보였다. 좋은 평가들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디자이너의 꿈을 갖고 있었던 미대생이었는데 클럽에 갔다가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다.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덕에 지금은 대만아트페어에 작품 출품하는 작가가 됐다
- 그렇다. 학생 때 전공도 미술이었고 가수 활동 할 때도 아트에 대한 열망이 컸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미술을 해야지 생각해왔다. 지금, 그 때가 온 것 같다.
-제가 춤을 출 때도 음악을 만들 때도 미술을 했었기에 크리에이터 적인 생각과 활동들이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에게 미술이란 멋의 근원지이다.
가수로, 화가로 활동해왔던 구준엽에게 '은인' 같은 인연이 있다면?
-김창환 형이 저의 은인이자 스승이라 생각한다. 음악 뿐 아니라 예술의 전반적인 영감을 주셨던 분 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처음 미술을 통해 인연이되어 함께 하고 있는 저희 팀에게도 감사하다.
스스로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면?
- 가요 프로그램 1등 했을 때의 그 기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티스트에게는 작품이 소장됨은 참 기쁘고 벅찬 일 인 것 같다. 저의 작품이 콜렉터 분들에게 픽 되어 가게 될 때 기쁘기도 하면서 그 책임감으로 작업에 대해 더 진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되고 그러는 것 같다.
구준엽의 '사랑'도 늘 화제다. 작가로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의미도 궁금하다. 작품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점도 있을까?
-사랑은 저도 잘 모른다. 그저 제 아내인 희원이가 저한 테 특별할 뿐이다. 그녀는 저의 아트테이너 활동에 영감을 주는 특별한 뮤즈이다.
개인적으로는 클론의 명곡 '쿵따리 샤바라'를 굉장히 좋아한다. 가사의 뜻을 되새기곤 하는데, 그 노래를 부른 구준엽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마음이 울적할 때'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
-꾹 참고 삼킨다. 그리고 인내한다. 제가 은근히 지구력이 강한 것 같다.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
-저는 저 자신을 잘 모르겠다. 하나 만들어달라(웃음).
클론의 구준엽, 그림을 그리는 구준엽, 사람으로서의 구준엽은 어떤 사람인가
-음악 하면서 그림 그리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구준엽이다.
여러 방면에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 앞으로는 구준엽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작가로서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다.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들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를 듣고 싶다
-용산구청 도시재생사업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가 용산구에서 오랫동안 살았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프로젝트에 특별한 애정으로 살며시 홍보를 해본다. 이번 년도 말에서 내년이면 완성이 될듯하다. 그리고 올해에는 저의 개인전을 대만과 한국 순차적으로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첫 솔로 전시이니 만큼 설렘과 기대 그리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뭘 해야될지 고민하고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아이고 제가 뭐라고 그런 말씀을(하하). 그래도 굳이 한 말씀드린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하세요. 하고 싶은 것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