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믿었는데" 실거주 의무 폐지 또 불발... 4만7000가구 속앓이
2024-01-09 15:19
실거주 의무 폐지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업계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실거주 의무 폐지를 요구했으나 결국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정부가 공언한 '실거주 의무' 폐지가 어려워지면서 실거주 의무를 적용 받는 4만7000여 가구의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내년 전국적으로 입주절벽이 예고된 상황에서 전세 물량 위축 심화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9일 국회 등에 따르면 당초 이날 예정돼 있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 개최가 무산됐다. 국회 본회의 전 '실거주 의무' 폐지를 심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국회 국토위는 지난해 12월 국토법안 심사소위를 열고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안건을 보류한 바 있다.
정부는 추후라도 법안통과를 전제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단지는 전국 72곳, 4만7595가구에 달한다. 당장 올해 입주를 앞둔 단지는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강동구 'e편한세상강일어반브릿지'(593가구) 등이다.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 입주 전 아파트를 팔았는데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워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만약 수분양자가 거주 기간을 채우지 않는다면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최악의 경우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가 수준으로 집을 다시 팔아야 한다. 최근 원자잿값 영향으로 분양가격이 급등한 만큼 수년 전 당첨된 수분양자가 분양가에 이자를 더한 금액만 받고 매각하면 상당한 금액을 손해 보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또 수분양자가 잔금을 치르지 못하다가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우려하고 있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계약금과 중도금 모두 날리게 되고, 사업자들 입장에서도 자금흐름에 악영향을 받게 되는 등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분양권 매매보다는 전세를 한번 주고 본인이 입주하는 방식으로 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부의 정책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은 자금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부분에서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을 공언한 만큼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약속한 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실거주 의무 유예기간, 대출 지원 등 정부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