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속도내나] '안전성' 대신 '노후도'로 패러다임 변화…역대급 공급절벽 해소될까
2024-01-02 18:07
정부가 도심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를 본격 추진한다.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착수하는 방안 등 재개발·재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목표다. 올해 역대급 '입주절벽'이 예고된 상황에서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정비사업 규제를 합리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1월 중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랑구 재개발 사업지에서 진행된 주민 간담회에서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후속 조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발표한 올해 신년사에서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사업속도를 높이겠다"며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 원자재값 인상으로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하고 공급부족 우려가 심화하면서 보다 확실한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입주 예정 물량은 1만921가구(임대 포함)로 2000년 조사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3만2819가구와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개선하려는 부분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첫 단계인 안전진단이다. 정부는 안전진단을 정비사업 절차 후순위로 미루거나 아예 생략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후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설립하게 돼 있는데 이 순서를 바꿔 사업 주체를 먼저 설립하게 하면 정비사업이 더욱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는 구상이다. 또 재건축의 기준을 ‘안전성’에서 ‘노후도’로 바꿔 준공 후 30년 이상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착수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특히 노후 주택이 많은 서울 지역이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 내 준공 30년 이상 된 노후 주거용 건물은 전체의 54.3%(23만3825동)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노후주택 비중은 2019년 39.5%에서 2020년 46.8%, 2021년 49.7% 등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아파트만 놓고 보면 현재 서울의 약 185만 가구 중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37만 가구(20%) 수준이다.
재개발 규제 역시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신용 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재개발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안전한 사업장까지 자금 조달 금리가 올라가며 금융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신용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또 노후도나 주민 동의 등 재개발 요건 완화 방안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정비사업 관련 규정들은 사업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며 "누적된 노후주택이 많아진 가운데 과거 만들어진 규제를 현 상황에 맞춰 바꾸겠다는 건 충분히 논의할 만한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