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2024년 글로벌 통상에서 주목할 핵심 이슈

2023-12-29 06:00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가고 푸른 용의 해, 2024년이 밝았다. 새해 글로벌 통상의 화두와 세계 경제 및 우리나라 무역에 영향을 줄 만한 이슈와 그 대응에 관한 전망에 정부는 물론 전문가들도 바쁘다. 그러나 2024년 국제 통상의 핵심 이슈는 2023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갈등과 분열, 파편화(fragmentation)라는 최근 국제 통상 전반을 관통하는 현상이 이미 10여 년 전에 시작되었고,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결정과 그다음 해 집권한 미 트럼프 행정부 때 본격화되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착화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2024년은 주요국의 대선이 있어(1월에는 대만의 총통선거, 3월에는 러시아의 대선, 11월에는 미국의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2023년에 비해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은 2023년과 다른 점이다. 대선 결과에 따라 통상 정책의 기조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의 예를 통해 세계가 경험한 바 있다.
 
통상 정책이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통상의 저변에 흐르는 근본 현상은 시장 원리에 토대를 둔 결과물이기 때문에 정치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어도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어떤 정치적 영향도 시장 원칙을 거슬러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2024년 글로벌 통상의 저변에 흐르는 핵심 이슈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몇 가지 흐름을 전망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소위 끼리끼리의 배타적 공급망 체계가 더욱 공고히 구축될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 블록(bloc) 내에서의 무역이 상대적으로 활발해질 전망이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이나 양자 컴퓨팅, 첨단 반도체 등과 같이 향후 세계의 먹거리를 좌우할 첨단 기술 제품은 국가 안보나 경제 안보를 내세워 자국 내 또는 블록 내 무역을 촉진하면서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와의 무역은 더욱 엄격히 제한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 미·중 갈등 내지 미국 중심의 민주와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로 대변되는 권위와 국가자본주의 진영의 대결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첨단 분야에서 자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보조금 지급이 더욱 만연해질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EU의 핵심 원자재법(CRMA), 최근 프랑스의 녹색 산업법도 겉으로는 기술 개발을 내세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자국이나 역내에서의 생산과 투자를 유인하는 배타적인 보조 정책이다. 모두가 WTO의 보조금 규범에 위반될 소지가 상당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도 자국의 핵심 산업에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공공연히 지급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세계 무역을 관장하는 WTO의 위상 추락과 함께 WTO 다자체제의 무용론까지 이어진다. WTO 다자체제의 유지와 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주요국들이 다른 한편에서 산업보조금의 경쟁적 지급과 배타적인 무역 조치로 WTO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모순이 오늘날 WTO 다자체제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니 2024년 2월 개최되는 제13차 WTO 각료회의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따라 탄소 저감을 명분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역 조치가 본격화될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잦아지는 지구촌 이상기후로 인해 향후 전 세계가 탄소 배출 제로 사회로 전환해 나갈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주요국이 취하고 있는 무역 조치이다. 대표적으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전력 등의 품목을 수입하는 EU 기업이 해당 품목의 생산이나 유통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필요한 만큼 돈을 내어 배출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일정한 금액을 관세로 더 내는 것이다. 미국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면 모르겠으나 자칫 위장된 수입 제한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특히 탄소 저감 생산 기술에서 선진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개도국들이 이 같은 조치로 인해 EU로 수출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탄소 저감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아닌 국가 사이에 갈등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기술 발전이 노동시장과 공급망 재편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결합된 로봇 등의 첨단 기술은 전문 노동은 물론 단순 노동도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의 노동시장 재편은 물론 기존 저임금의 이점을 가진 개도국의 생산기지 역할도 축소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은 첨단 기술과 관련 서비스를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기업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지의 환경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당연히 관련 제도와 규범의 개혁이 중요해진다.
 
종합하면 국제 통상의 관점에서 2024년은 갈등과 대립, 분열과 파편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져 그 어느 때보다도 대응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여기에 빠르게 진화·발전하는 첨단 기술에 대한 대응, 즉 기술과 통상이 화두로 등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