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보다 '안정' 택한 삼성...노련한 선장 리더십 속 미래 먹거리 확보

2023-11-27 18:07
경제ㆍ정치·사법 리스크 확대에 인사폭 역대 최소

삼성전자 사옥[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27일 발표한 2024년 사장단 인사의 주요 키워드는 첫째도 둘째도 '조직 안정'으로 꼽힌다. 내년 치르는 총선과 미국 대통령선거 등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가전·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를 달리기 위해선 '변화'보다는 '노련한 선장'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사장단 인사가 '쇄신'보다 '안정'에 무게를 둔 만큼 향후 이어질 조직 개편과 부사장단 이하 인사에서는 미래 산업 준비를 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래전략실 부활하나···미래사업기획단 신설
이날 삼성전자는 내년 조직 개편을 통해 부회장급 조직으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전 계열사의 미래 먹거리 발굴과 투자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수장은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이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재임 당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 시대' 포문을 연 반도체 신화 주역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래사업기획단은 그간 축적된 풍부한 경영 노하우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삼성의 10년 후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임무를 맡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캐시카우 역할 할 새로운 과제를 주도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미래사업기획단이 과거 삼성전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과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
 
삼성의 성과주의 원칙은 이번 인사에서도 예외 없었다. 1970년생 젊은 리더를 사장으로 발탁하며 '세대 교체'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용석우 사장은 1970년생으로 작년에 최연소 사장이 된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1968년생)보다 젊다.

용석우 사장은 TV 개발 전문가로 2015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상무로 합류해 2020년 전무, 2021년 부사장 등을 거치며 기술·영업·전략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퍼블릭 어페어(Global Public Affairs) 팀장인 김원경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해 같은 부서 실장을 맡게 됐다. 1967년생인 김원경 삼성전자 글로벌퍼블릭 어페어실장 사장은 외교통상부 출신인 글로벌 대외협력 전문가다. 2012년 3월 삼성전자에 합류해 글로벌마케팅실 마케팅전략팀장, 북미총괄 대외협력팀장을 거쳐 2017년 11월부터 글로벌퍼블릭 어페어팀장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임 용석우 사장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환경에서 삼성전자의 기술 리더십 강화를 주도할 적임자"라며 "김원경 사장 역시 풍부한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협력관계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변화'보다 '안정'에 무게···한종희·경계현 유임 배경은?
이번 인사에서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투톱 체제가 유지된 배경에 대해선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 안정을 택하고자 했다는 평가다. 주력인 반도체 사업 부진 등에 세대교체로 인한 변화보단 내년 사업 전략을 미리 준비하며 체제를 정비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실제 예년보다 올해 인사는 일주일가량 앞당겨졌다. 
 
앞서 일각에서는 반도체 사업이 올해 12조원 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경계현 DS부문장이 교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DS부문은 올해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 등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방산업 수요가 위축된 탓이라고는 하지만 이에 대해 인적 쇄신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 측면에서 이재용 회장이 중대한 변곡점에 놓인 점 역시 투톱 체제 유지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내년 1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최근 검찰이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만큼 무엇보다 경영상 안정이 뒷받침돼야 하는 상황이다.
 
2인 대표이사 체제 유지와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경영 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 등 지속 성장이 가능한 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유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이번에는 작년 대비 규모가 작은 소폭 인사로 안정에 중점을 두려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장단 인사는 총 5명으로 작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현재 삼성전자에 대내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안정이라는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