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기의 핀스토리] 美 은행 파산과 '조상제한서'…"자산건전성을 지켜라"

2023-11-15 06:00
고금리 장기화에…뉴욕 연은 "일부 은행 유효자본 악화 가능성"
韓 금융권 주름잡던 '조상제한서', IMF 후폭풍에 역사의 뒤안길로
現 4대 시중은행, 연체율 상승에 대손충당금 확대…"보수적 접근"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 연달아 은행이 파산하면서 금융권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은행 파산이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험으로 번지거나 국내 은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외 금융권에서는 과거 위용을 자랑하던 은행이나 금융회사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던 선례를 생각하면서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에도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겠다는 각오다.
 
고금리 장기화에 美 중소은행 ‘비명’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사람들이 은행 앞으로 몰려와 상황을 살피고 있다. [사진=UPI·연합뉴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의 통화 긴축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현지에서 은행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글로벌 은행산업 트렌드’를 통해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일부 은행이 증권 포트폴리오 손실로 자금이탈이 확대되고 유효자본 수준이 크게 나빠질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도 은행 산업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국 은행들이 금리 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자산구조를 적절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증명하듯 올해 미국에서만 은행 5개가 자취를 감췄다. 특히 지난 3월 문을 닫은 실리콘밸리은행(SVB)은 미국 은행 중 자산규모 16위였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상당했다. 최근에는 94년 역사의 지역은행 시티즌스은행이 파산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SVB 등 은행들이 파산한 이유로 기준금리가 16년 전인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꼽는다. 우선 채권금리가 기준금리를 추종해 오르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이후 은행이 보유한 장기물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단시간에 대규모 예금인출이 이뤄진 게 SVB 사태의 전말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시티즌스은행의 파산 원인은 대출 손실이다. 차주들이 고금리를 버텨내지 못하고 상환에 실패하면서 은행까지 위험에 처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은행의 연이은 파산에도 금융권은 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은행은 자본 부족이나 은행 운영 위험에 대한 노출이 덜하고, 현재 미국의 은행 시스템이 양호한 회복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상제한서’ 전철 밟으면 곤란…자산건전성 확보 ‘사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합병한 2006년 당시 개최된 통합 신한은행 출범식. [사진=신한은행]
금융권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은행 파산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은행들의 자산구조가 SVB 등과 다르고 기초체력이 튼튼해 국내에서 개별 은행의 파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미미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 세계 금융시장은 결국 모두 연결돼 있는 만큼 해외라고 하더라도 균열이 계속 생겨나는 게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게다가 과거 한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에 발판을 제공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조상제한서’의 사례도 은행권이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조상제한서는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등 과거 5대 시중은행의 앞 글자를 딴 명칭이다. 20세기 적극적으로 신용을 제공해 국가 경제가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조흥은행은 2006년 신한은행에 인수·합병(M&A)됐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1999년 대등합병 이후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했다. 한빛은행은 3년 뒤 이름을 우리은행으로 변경했다. 제일은행은 2005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에 인수됐고, 서울은행도 2002년 하나은행에 합병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조상제한서가 사라진 자리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대체하고 있다. 미국처럼 은행이 파산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내 은행도 고금리로 인해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자산건전성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의 3분기 말 기준 연체율은 △KB국민은행 0.25% △신한은행 0.27% △하나은행 0.29% △우리은행 0.31%다. 작년 말과 비교했을 때 신한은행은 0.06%포인트, 나머지 은행은 0.09%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은행권은 대손충당금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호실적일 때 순익 중 일부를 떼어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금융권에도 외국 은행의 파산이 국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자산건전성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 대손충당금 확보 등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