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직행버스 탈 때 지하철 '3번' 갈아타는 장애인…시외이동권 10년째 '제자리'
2023-11-13 17:30
"이번 연말에도 가족들을 보러 가려면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가야 해요. 광역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데 광역버스에는 휠체어 승강설비 등 승하차 편의가 없어 정작 저는 탈 수가 없습니다."(30대 장애인 A씨)
"시외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할 경우 장애인들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에요. 노약자도, 어린 아이를 둔 유모차 이용자도 이용할 수 있지요. 키가 작은 아이들도 좀 더 편하고 안전하게 버스에 탈 수 있습니다."(40대 장애인 B씨)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이동 및 교통수단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지 12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외 이동수단에 저상버스 도입은커녕 휠체어 승강설비 조차 제대로 갖춘 버스가 없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장애인들이 시외버스, 광역버스, 고속버스 등 시외 이동수단에 휠체어 승강설비 및 저상버스를 도입해달라고 소송을 낸 지도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법원에서 재판만 계속될 뿐 변한 건 없다. 시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외침이 계속되는 이유다.
"바꾸고자 하는 것은 '모두'의 문제"…2014년 소송의 시작
원고들은 그동안 광역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버스라는 가깝고도 편리한 교통수단을 놔두고 지하철이나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일을 감수해야 했다. 시내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됐지만, 시외버스와 광역버스에는 교통약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 등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불편은 십수년 전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겪어야 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당시 관련 기관들은 "새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과도한 예산이 소요된다"고 반대했다. 대신 '승강기 리프트'를 대안으로 설치했다. 하지만 가파른 계단에 승강기 리프트는 잦은 사고를 유발했다. 장애인들의 투쟁 끝에 대부분 지하철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됐다. 혜택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약자, 유모차 이용자 등도 누릴 수 있었다.
1·2심 "휠체어 승강설비 제공하라"…'저상버스' 도입은 인용 안돼
원고와 버스회사는 각 패소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 2015년 12월 항소심 변론기일이 시작된 이후 조정기일이 5번이나 열렸지만 조정은 불성립으로 끝났다. 2019년 1월 2심 법원도 1심과 마찬가지로 버스회사의 휠체어 승강설비 제공의무 부분만 인용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양측은 다시 상고했다. 원고는 "이 소송이 제기된 후 유엔 장애인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장애인이 모든 대중교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며 "하지만 버스회사들은 1심 패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춘 버스를 단 한 대도 추가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대법, 기존 인용 부분 '파기'…10년째 소송은 '현재진행형'
하지만 지난해 2월 나온 대법원의 판단은 '파기환송'이었다. 대법원은 "법원은 구체적인 사안별로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하되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도록 한 원심 판결은 비례의 원칙에 의거해 과도하고, 버스회사가 제공하는 '정당한 편의'에 '저상버스'까지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봐야한다"며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하고 원심인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원심은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 버스회사들의 자산·자본·부채, 재정상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 등을 심리하고 이를 토대로 이익형량 해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그 의무 이행기 등을 정해야 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임한결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행위의 영역 및 수단에 관한 조항을 한정적인 것으로 해석해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 등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무과한 것으로 봤다"고 꼬집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마무리를 맺지 못한 채 현재 파기환송심이 계속 중이다. 소송을 처음 제기한 10년 전에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휠체어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장애인들은 버스를 타고 시외로 이동할 수가 없다. 법조계는 장애인들이 '시외이동권'이라는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법원이 보다 전향적인 판결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정노 변호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데 이 사건 소송은 이제 거의 10년 가까이 돼 가고 있다"며 "소송의 영향인진 모르겠지만 소송 중에 경기도에서 2층 저상형 광역버스를 도입하는 등 일부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속 부딪혀서 좋은 하급심 판례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그것들로 흐름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