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유족 품으로…法 "출판사, 캐릭터 사용 금지"

2023-11-09 18:02
유족 측 계약 무효 청구 각하…해지 청구는 인용
계약 유효 기간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

지난 9월 18일 오후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갤러리에서 고(故) 이우영 작가 추모 특별기획전 '이우영 1972 - 2023 : 매일, 내 일 검정고무신'이 열렸다.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 원작자인 이 작가는 저작권 관련 분쟁 도중 세상을 등졌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만화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이 출판사가 아닌 원작자인 고(故) 이우영 작가 측에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작가 측이 계약이 유효했을 당시의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일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박찬석 부장판사)는 9일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장모 대표가 이 작가와 유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작가 측이 장 대표에게 손해배상금 7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재 이 작가와 출판사 간에 사업권 계약 효력이 없다고 봤지만, 유효했던 기간의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해선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불공정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이 작가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작가와 형설앤 사이 계약 효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며 "형설앤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표시한 창작물과 광고물 등을 생산·판매·반포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날 선고 후 이 작가 유족의 변호인은 "고인이 마음 고생한 부분에 대해 충분히 위로받을 판결은 아닌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검정고무신'이 결국 이 작가의 유족 품에 돌아왔음이 확인됐지만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쉽다"며 "2심에서 충분히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가의 부인은 "너무 떨리고 너무 힘든 밤을 보내왔다"면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남편이 만족하는 결과 낼 수 있도록 항소해서 (재판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990년대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 중학생 기철이와 가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아내 인기를 끌었다.

이 작가는 2007년 캐릭터 업체인 형설앤과 저작권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갈등이 깊어졌고, 형설앤 측은 2019년 6월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책을 허락받지 않고 그렸다며 2억8000여만원 상당의 소송을 냈다.

반면 이 작가 측은 출판사 측에 저작권 일부를 양도했음에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불공정 계약이라고 맞섰다. 그러면서 저작권 침해 금지를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형설앤 측과 저작권 분쟁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던 이 작가는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이 작가 사후 저작권 분쟁 배경이 알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  '검정고무신'과 관련해 장 대표에게 불공정 행위를 중지하고 미배분된 수익을 이 작가 등에게 지급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비슷한 무렵 '검정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와 기철이 등 캐릭터 9종에 대한 공동저작자 등록을 직권으로 말소 처분했다. 이로써 이 작가만이 유일한 저작가로 인정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