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문명과 야만

2023-10-19 05:00
우린 '문명', 너는 '야만'
6대 총리 베긴 "아라파트, 두 다리 달린 짐승"
야만화 일상…"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없어"

“그 사악한 도시를 우리는 폐허로 만들겠다. 나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강력한 작전을 펼칠 것이다. 지금 당장 떠나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8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즉시 떠나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네타냐후가 알고 있듯, 200만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갈 곳이 없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감옥’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높이 8m에 달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공중, 육지, 해상 모두가 봉쇄돼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이미 봉쇄돼 있어서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해 6월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전기 공급은 하루 12시간만 허용되며, 수돗물의 97%는 식수로 적합하지 않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력, 물, 식량 공급을 바로 차단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고위급 인사들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 짐승, 야만으로 칭했다. 이스라엘 스스로를 문명으로 칭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네타냐후는 “문명 세력은 하마스를 패배시키는 데 있어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우린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이스라엘 극우 의원들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인 제리코 미사일을 사용해서 야만의 땅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일부는 1948년의 나크바(대재앙의 날)를 꺼냈다. 나크바란 시온주의(유대인 민족주의) 민병대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한 것을 일컫는다. 1만5000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고위급 인사들이 팔레스타인을 야만으로 칭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을 창당한 이스라엘 6대 총리 메나헴 베긴은 19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를 '두 다리 달린 짐승'이라고 칭하곤 했다.

이러한 야만 프레임은 일상화됐다. 올해 2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후와라 마을에 몰려가 돌을 던지거나 불을 지르는 등 폭력 난동을 벌였을 때 대표 극우로 꼽히는 베잘렐 스모트리치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팔레스타인 후와라 마을은 말살돼야 한다. 민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모트리치는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짐승이고, 이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관행 깨기로 이어졌다. 극우파들은 가자지구를 재점령해서 정착촌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이슬람 신자에게만 사원 경내 기도를 허용하는 알 아크사 모스크에 경찰을 투입해 예배 중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둔기로 때리는 등 이슬람 성지를 짓밟았다.
 
당연히 가자지구 주민들의 삶은 비참 그 자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가자지구 어린이 100명 중 95명은 우울함, 공격성 등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실업률은 2022년 기준으로 47%에 달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PCBS)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빈곤율은 53%이며, 가자지구 주민의 3분의1(33.7%)이 극빈층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일주일 간 폭탄 6000발을 퍼붓고 백린탄까지 사용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던 라파 등 남부에 기습 폭격도 가했다. 18일 기준으로 어린이 사망자만 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쯤 되면 의문이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네타냐후의 기준은 무엇인가.
 

윤주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