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3) '사회주의' 베트남, 민간 주도 경제로 방향 트나
2023-10-12 08:46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2019년 6월 14일 하이퐁 딘부-깟하이(Dinh Vu-Cat Hai) 공업단지에 있는 빈패스트(Vinfast) 자동차 생산공장 개장식에 참석하여 “오늘날 빈패스트의 성공은 전 베트남 자동차산업의 위업이며, 우리나라를 글로벌 수준에 다가가게 할 것이다. 사유(민간) 부문이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서기장)는 이미 2017년 11월 14일 빈패스트 건설 현장을 방문하여 빈패스트 자동차 프로젝트를 높이 평가하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빈패스트가 속한 빈(Vin)그룹은 민간 재벌로서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린다. 이런 민간기업 활동에 공산당 총비서와 총리가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후원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드문 일이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1990년대 초반 이래 계속하여 국가 발전 목표로 “공업화, 현대화”를 부르짖었다. 이를 달성하는 데 국유경제 부문이 전체 국가 경제의 주도 부문이라고 역설해왔다. 2013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도 국유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규정한 문구를 헌법에서 삭제하자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국유경제의 선도성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국가 최고위 지도자들이 민간기업을 경제 발전의 동력이라고 공식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최근에 빈(Vin)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베트남 최고위 지도자들이 민간 대기업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렇다면 최근 민간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이러한 경제 발전 전략상 변화를 뜻하는 것인가?
얼마 전까지 베트남 정부의 공업화 전략은 산업 부문별 육성 정책보다도 소유 부문별 발전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베트남이 개혁에 착수한 이래 다양한 소유제의 공존을 인정했으나 주도적 역할은 계속하여 국유경제 부문에 두었다. 그 공업화 전략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국영기업이 담당하고 비핵심 부문을 민간기업이 담당하여 국유경제 부문이 국가 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배치하는 것이었다.
2011년 제11차 공산당대회에서 채택된 '2011~2020년 사회경제발전전략'에서도 경제 각 소유 부문의 경영자 주권과 공평성을 담보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체제’를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는 여전히 견지됐다. 기업 부문에서는, 국영기업, 특히 국영기업집단과 ‘총공사’(소규모 기업집단) 기업 활동의 효과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했다. 국영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강력한 다소유(多所有) 기업집단을 건설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국가가 지배적 역할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2011년 시점에서도 소유제를 다양화하면서도 국유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여전히 강조하면서 국영기업의 경영효율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후 베트남은 2016년 제12차 공산당대회에서 소유 부문별·기업 유형별 평등이 증진되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체제’ 발전을 여전히 기본 목표로 두었다.
민간기업 발전을 본격적으로 장려한 것은 2010년대부터다. 2011년 제11차 공산당대회에서 채택된 '2011~2020 경제사회발전전략'에는 “사유(민간)경제가 경제의 여러 동력 중 하나”라고 언급됐고 2016년 제12차 공산당대회 '정치보고'에는 “사유(민간)경제가 경제의 ‘중요한’ 동력”이라고 평가됐다. 이 보고는 “사영(민간)기업집단을 설립하고 개인들이 국영기업집단에 자본을 투자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2021년 제13차 공산당대회에서도 같은 논조가 유지됐다. 제13차 공산당대회 '정치보고'는 “사영(민간)기업과 국영기업 간 협력과 연계를 장려한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보면 2010년대 중반부터 민간기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하에 국유경제 부문과 민간경제 부문의 협력 또는 연계가 중요한 문제로 제시됐다.
이러한 민간기업의 활성화 과정에서 중소 규모 기업이 다수 설립됐고 대형 기업과 민간 재벌이 등장했다. 예컨대 빈(Vin)그룹, 비엣젯항공, 마산(Masan)그룹, 화팟(Hoa Phat)철강, 쯔엉하이 오토(Thaco), 선(Sun)그룹 등이 그들이다. 대형 민간기업들의 성장은 베트남 정부의 경제 발전 전략상 환경을 변화시켰다.
- 경제구조의 변화
베트남 경제 전체에서 민간기업의 역할을 중시하게 된 것은 경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다. 베트남 경제구조에서 국유경제 부문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국내 비국유((민간)경제 부문과 외국인 투자 부문이 증가해 왔다. GDP에서 국유경제 부문 비중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 20%에 근접하는 정도로 감소했고 국내 민간경제 부문 비중이 절반 이상, 외국인 투자 비중이 10% 미만에서 증가해 2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베트남 통계총국은 소유 부문별 GDP 비중 통계에서 세 부문에 더하여 2010년대부터 '세금(-보조금)' 항목을 넣어 네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2010년에 두 통계 방식에 따른 각 소유 부문별 GDP 비중을 비교해 보면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소유 부문별 GDP 비중(%)
연도 | 1990 | 1995 | 2000 | 2005 | 2010 | 2010 | 2015 | 2020 |
국유 부문 | 31.8 | 40.1 | 38.5 | 38.4 | 33.7 | 29.34 | 22.84 | 20.67 |
국내 비국유(민간) 부문 | 68.2 | 53.5 | 48.2 | 45.6 | 47.5 | 42.96 | 50.63 | 50.56 |
외국인 투자 부문 |
6.3 | 13.3 | 16.0 | 18.7 | 15.15 | 17.46 | 20.00 | |
세금(-보조금) | 12.55 | 9.07 | 8.77 |
한편 공업생산액에서 국유 부문 비중은 1990년대에 50% 이상에서 감소해 2010년에 19.1%를 기록한 이후 계속 2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민간경제 부문 비중은 1990년 46%에서 이제 80% 이상으로 증가했다. 여기에서 국내 민간 부문이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 30% 전후를 보였고 외국인 투자 부문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3년 50%에 이르게 됐다. 베트남 통계총국이 2014년부터 소유 부문별 공업생산액 통계를 제시하지 않아 최근 그 비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부타인 뜨아인(Vu Thanh Tu Anh)은 2017년 공업생산액 중 국유 부문 비중이 19%, 외국인 투자 부문을 포함한 민간 부문 비중이 81%였다고 추산했다.
소유 부문별 공업생산액 비중(%)
연도 | 1990 | 1995 | 2000 | 2005 | 2010 | 2013 | 2017* |
국유 부문 | 54.1 | 57.3 | 34.2 | 24.9 | 19.1 | 16.3 | 19.0 |
국내 비국유(민간) 부문 | 41.4 | 28.2 | 24.5 | 31.3 | 38.9 | 33.6 | 81.0 |
집체 | 12.2 | 0.8 | 0.6 | 0.4 | 0.4 | - | |
사유 | 0.7 | 2.4 | 14.2 | 22.8 | 32.5 | - | |
가계 | 28.4 | 20.7 | 9.7 | 8.1 | 6.0 | - | |
혼합 | 0.1 | 4.3 | - | - | |||
외국인 투자 부문 | 4.5 | 14.5 | 41.3 | 43.8 | 42.0 | 50.1 |
- 민간기업 중시 경제 발전 전략
그간 경제구조 변화를 보면 국유경제 부문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고 공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하로 감소했다. 국유경제 부문 비중의 지속적 감소는 국유경제 부문이 국가 경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산당과 정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물론 공산당과 정부는 국가 경제의 기간산업들을 100% 정부 소유 국영기업으로 존속시키며 이것이 곧 경제 전반의 주도 부문으로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트남 국영기업의 비효율은 지속되고 있고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국가 경제에서 국유경제 부문의 주도적 역할은 ‘레토릭’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됐다.
최근 베트남 최고위 정치지도자들이 빈그룹에 대해 지지하는 사례에서 보듯이 베트남은 기존 국영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기업을 중요한 경제성장의 파트너로 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기에 민간경제 부문이 국가 경제의 중추가 되는 정책을 공식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민관 협력’이라는 형식하에 실질적 민간경제의 진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러한 ‘사유화’의 방향은 대외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인하고 대내적으로 민간기업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은 국영기업이 사회에 공공재를 공급하며 국유경제 부문의 주도성을 명목상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국영기업 대신에 민간기업을 중시하는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와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