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0) 베트남 정치권 '붉은 씨앗'…제2 도이머이 주도할까
2023-05-01 15:30
젊은 보반트엉(Vo Van Thuong, 1970년생) 공산당 상임 비서가 올해 3월 2일 베트남 국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임됐다. 일부 논자들은 이를 베트남 정치에서 세대교체의 시작으로 봤다. 그렇다면 트엉 주석의 선임은 베트남 정치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일찍이 일부 베트남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정치 변동이 세대교체를 통해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베트남 정치에서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면 앞으로 어떤 인물들이 주역으로 등장할까 자못 궁금하다. 더불어 신세대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고 이전의 정치 지도자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는 점도 궁금하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고위 정치인의 자녀들이 정치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간에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최고위 정치인의 자녀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만 들어도 김정은 총비서, 리셴룽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등이 있다. 얼마 전에 국가수반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대통령의 딸들이었다. 베트남에서 보반트엉이 국가주석으로 선임되며 언론들은 그가 보반끼엣 전 총리의 자녀니 손자니 하는 추측성 보도들을 냈다. 그를 비롯하여 베트남에도 중국의 태자당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베트남의 태자당 ‘붉은 씨앗’의 등장
베트남에서도 얼마 전부터 고위 정치 지도자의 자녀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붉은 씨앗(hat giong do)’이라고 불린다. ‘붉은 씨앗’은 유력 정치인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넓은 뜻으로는 신세대 사회주의 정치인들을 일컫는다.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붉은 씨앗’은 농득마인(Nong Duc Manh)이다. 그가 정치 무대에 등단했을 때 그를 ‘붉은 씨앗’이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호찌민의 아들로 알려졌다. 그가 2001년 공산당 총비서(서기장)로 선임됐을 때 어느 외신 기자가 그에게 호찌민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마인 총비서는 베트남 국민들은 모두 호찌민의 자녀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1940년 박깐성에서 출생했다. 실제로는 1942년생이라는 소문도 있으나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호찌민이 중국 남부에서 혁명운동을 하다가 국경을 넘어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인 까오방으로 귀국한 게 1941년 1월이었다. 박깐은 까오방의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지역이다. 농득마인은 1992년부터 10년간 국회의장, 2001년부터 10년간 공산당 총비서로 있었다. 베트남에서 정치 지도자로서 누릴 걸 다 누린 셈이다. 그가 총비서였을 때에는 ‘붉은 씨앗’ 정치인들에 대해 항간에 떠도는 얘기는 많지 않았다.
-현직에 있는 ‘붉은 씨앗’
현재 베트남에서 대표적 ‘붉은 씨앗’은 보반트엉 국가주석이다. 그는 공산당 비서국 상임 비서를 하다가 2023년 3월 국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임됐다. 트엉 주석은 1970년 북부 하이즈엉(Hai Duong)에서 출생했으나 남부 메콩 델타의 빈롱(Vinh Long)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트엉 집안이 남부의 빈롱성에서 베트남전쟁 때 북부로 이주해 살았기에 트엉도 북부의 하이즈엉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유년 시절에 북부에서 지내다가 통일 후 남부로 내려갔고, 호찌민시 인문사회과학대학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베트남에서는 출생지와 출신지를 구별하는데, 출신지는 ‘꾸에꾸안(que quan)’이라고 하며 가족의 고향이다. 보통 부친이나 조부의 출신지를 말한다. 사회에서는 출생지보다는 출신자가 더 중요하다. 트엉 주석이 국가주석이 되며 누구의 자녀인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전임 총리였던 보반끼엣의 아들, 손자, 집안 사람이라는 주장들이 섞여 있다. 트엉이 끼엣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이렇다. 끼엣은 전쟁 중에 첫째 부인과 두 아들을 잃고 나중에 판르엉껌(Phan Luong Cam)과 재혼했다. 끼엣과 둘째 부인 사이에 자녀가 있다는 얘기는 공식적으로는 없으나 세간에는 트엉이 이들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끼엣과 트엉은 모두 공식적으로 빈롱 출신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중간 이름을 아버지 이름과 같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반끼엣과 보반트엉의 중간 이름이 모두 ‘반(Van)’이다. ‘반’은 글월 문을 뜻하며 남자 이름에 흔히 쓰인다. 그러나 보반끼엣이 1939년 공산당에 입당하며 쓰기 시작한 새 이름이고 그전 실명은 판반호아(Phan Van Hoa)였기에 트엉이 끼엣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끼엣이 입당 후 사용한 이름에 따라 트엉이 ‘반’을 썼을 수도 있다. 끼엣은 1922년생이니 1970년생 트엉이 손자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트엉의 출신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그가 보반끼엣의 자녀 세대 중 한 사람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보반트엉 이외에도 2021년 제13차 공산당대회를 전후하여 유력 정치인 자녀 중 정치국 위원에 오른 인사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제13기 정치국은 최고위 인사 18명으로 구성됐다. 팜빈민 부총리는 응우옌꺼타익 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의 아들이다. 그는 2016년 제1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돼 외교부 장관과 부총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제13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위원으로 재선임됐고 부총리를 맡았으나 올해 초 사임했다. 쩐뚜언아인(Tran Tuan Anh, 1964년생)의 부친은 쩐득르엉 전 국가주석이다. 그는 2016년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고 2021년 새롭게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됐다. 그는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고 지금은 공산당 중앙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레민흥(Le Minh Hung, 1970년생) 당 중앙사무처장은 공안부 장관을 역임한 레민흐엉의 아들이다. 그는 당 정치국 위원은 아니며 2016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고 베트남국가은행 총독(중앙은행 총재)을 역임했다. 그는 당 비서국 사무처장을 맡고 있으며 2021년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앞에 언급한 응우옌떤중 전 총리의 아들 응우옌타인응이는 2021년 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에 선임됐고 지금은 건설부 장관을 맡고 있다. 앞에 언급한 응우옌신훙 전 국회의장의 조카 쩐시타인은 하노이시 인민위원회 주석(위원장)으로 있다. 여기에 올해 초 팜빈민, 부득담 두 부총리가 사임한 후 쩐홍하 장관과 함께 새로 부총리가 된 쩐르우꽝(Tran Luu Quang, 1967년생)도 주목할 만한 인사다. 쩐르우꽝은 서남부 떠이닌 출신인데 하이퐁시 당 위원회 비서로 있다가 중앙 정치 무대로 옮겨 부총리가 됐다.
- 베트남 정치에서 신세대와 제2의 ‘도이머이’
이처럼 근래에 베트남 정치의 장에 신세대가 등장하며 그 일부는 이전 정치 지도자들의 자녀들로 구성됐다. 특히 2011년 이래 베트남 정치계에 자녀 세대 ‘붉은 씨앗’이 많아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나이로 보면 1970년 전후에 출생한 인사들이다. 이들이 한 파벌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현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비교적 높은 인사들이라고 여겨진다. 옛 정치 지도자의 자녀들이 정치의 요직에 등용된 것은 혁명가 가족에 대한 신뢰와 사회주의자로서 잘 육성됐으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보반트엉을 비롯해 신세대 정치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담은 논설이 발표되지 않아 그들의 생각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신세대 정치인들이 자기 생각을 나타낼 때 그들의 ‘신사고’가 어떤지를 주목해봐야겠다. 제2의 ‘도이머이(Doi Moi·쇄신)’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필자 주요 이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