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통신에 집중한 가계통신비 낡은 기준…콘텐츠·기기 구매 비용 추가해야"

2023-09-20 16:30
"디지털 소비 동향 반영한 수치 필요" 한 목소리

20일 한국경영과학회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가계통신비 토론회 현장 [사진=최연두 기자]
기존 가계통신비 영역을 확장해 디지털 콘텐츠 소비, IT 기기 구매 등을 관련 비용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10여년 간 방송 프로그램·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콘텐츠 이용료와 더불어 태블릿PC·단말기 구매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유엔(UN) 등 국제 사회 동향에 따라 가계통신비를 '가계디지털비'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일 한국경영과학회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계통신비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현 가계통신비는 통신에만 집중돼 있어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의견을 냈다.

현행 가계통신비는 통신 요금과 단말기 값이 통합 고지되는 방식이다. 이 둘이 분리돼 고지되지 않는 탓에 매해 통신 요금이 늘어난다는 착시가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구나 가계의 디지털 부문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통신비 고지 방식에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한 이후 이용자가 콘텐츠 시청과 기기 구매에 쓰는 비용은 급증했다. 곽정호 호서대 빅데이터·인공지능(AI)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1년에 비해 작년 콘텐츠 이용료는 8배 증가했으며 디지털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배 커졌다. 디지털 기기 구매 비용은 같은 기간 160% 올랐다. 전체 디지털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두 배 늘었다. 반면 통신 이용료는 20% 감소했고 같은 기간 디지털 비용에서 통신 이용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79.7%에서 55.5%로 24.2% 포인트 줄었다.

이미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통신비를 가계디지털비로 조사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된 상황이다. 한국표준목적별 개별소비지출분류(COICOP-K) 기준이 지난 2019년 7월 개정되면서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 시행이 3년 넘게 늦어져 기기·서비스 구매 비용은 '오락·문화비'에서 '문화서비스' 항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곽 교수는 "전통적 가계통신비의 개념에 단말·콘텐츠·플랫폼 등의 이용과 관련한 비용 항목을 추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들 비용 항목의 증가를 정책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계통신비 정책 시행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국가와 비교해도 국내 가계통신비(서비스 및 장비)는 낮은 수준이다. 국가별 월평균 가계통신비는 미국이 181.9달러(24만2018원·2021년), 스위스가 181.2달러(24만996원·2020년), 영국이 109.3달러(14만5369원·2022년), 한국이 99달러(13만1769원·2022년)였다. 다만 국내 가계통신비는 해외 국가에 비해 통신 장비 비용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통신비 중 장비 비용 비중이 한국은 22.3%인데 반해, 8개국 평균은 6.9% 수준이었다.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 지출 규모도 최근 급격하게 늘었다.

변재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전문위원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통신 이용료 지출 비용뿐 아니라 통신 장비 비용, 디지털 서비스 소비 비용에 대한 체계적인 원인 분석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