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부실 쓰나미 온다] 5대 은행 '미뤄준 대출 원금·이자', 3년 순익과 맞먹는다…"지금이 임계치"
2023-08-29 17:52
당국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대상, 꾸준히 줄고 있다"
은행권, 상반기에만 부실채권 2.2조 털어내
"당국 대응책 새출발기금, 모든 차주들 구제 보장 없어"
"당국 판단 근거, 다중채무자 간과 가능성도"
은행권, 상반기에만 부실채권 2.2조 털어내
"당국 대응책 새출발기금, 모든 차주들 구제 보장 없어"
"당국 판단 근거, 다중채무자 간과 가능성도"
금융당국은 다음 달 '빚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 일시에 대출 만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과 원금·이자에 대한 상환 유예 대출 잔액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 당장 위험할 수 있는 이자 상환 유예 역시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손실 흡수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작년 9월 당국이 5차 연장에서 발표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연착륙 지원 방안'을 보면 금융권 자율협약에 따라 만기 연장은 3년(2025년 9월까지), 상환 유예는 1년(2023년 9월까지) 추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월부터 상환 유예 차주는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데 최대 5년까지 상환기간이 부여됐다. 상환 유예 차주는 금융기관에서 컨설팅을 받아 상환계획서 작성도 마친 상태다. 또 유예된 이자에 대해서는 최대 1년까지 거치기간도 주어졌다.
전체 대출 잔액 중 93%를 차지하는 만기 연장은 당초 예고대로 2025년까지 일괄 연장된다. 만기 연장 차주들은 이자를 정상적으로 납부하고 있고 만기만 재연장된 것이어서 부실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당국 측은 설명한다. 금융위는 부실 가능성이 큰 상환 유예 조치가 다음 달 말 종료돼 상환 의무가 곧바로 발생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만기 연장도 함께 끝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상환 유예 금액 역시 금융권 전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1498조원 가운데 1조원에 불과해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자 상환 유예 차주가 실제로 모두 부실에 빠진다고 해도 연체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당국 견해다.
또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지원 대상이 꾸준히 줄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9월 5차 연장 발표 당시 대출 지원 대상 잔액은 100조1000억원(43만4000명)에서 올해 6월 말 76조2000억원(35만1000명)으로 줄었다. 9개월 새 잔액 기준으로는 25%, 차주 수 기준으로는 20% 감소했다. 800명 규모인 이자 상환 유예 차주에 대해서는 일대일 관리에 들어간다는 계획도 내놨다.
5대 은행 "지난해 순익 13조인데···미뤄진 대출 잔액 37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코로나 소상공인 지원이 시작된 2020년 9월 이후 지난 5월까지 여러 형태로 원금이나 이자 납기가 연장된 대출 잔액은 36조6206억원, 건수로는 25만9594건(만기 연장·원금 상환 유예·이자 유예 중복)에 이른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작년 순익 합계가 13조586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여 동안 순익을 갉아먹는 부실 금액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5대 시중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부실 채권을 2조2130억원어치 상각 또는 매각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9907억원) 대비 2배를 웃도는 수준이며 지난해 연간 규모(2조2713억원)와도 막먹는다.
부실채권 매각·상각은 금융기관이 채권 회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권은 여신을 장부에서 상각해 없애는 과정에서 그 손실을 미리 잡아뒀던 대손충당금으로 상쇄한다. 또한 담보를 보유한 대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매각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은행권은 자산과 부실 채권 규모가 줄면서 연체율이나 재무건전성 비율 등을 낮춘다.
하지만 이는 장부상 표면적인 단기 처리 과정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부실채권이 많을수록 이익을 떼 충당금을 그만큼 많이 쌓아둬야 한다. 건전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수익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은행권은 입을 모은다. 실제 5대 은행의 6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과 신규 연체율은 각각 0.29%, 0.09%로 전월 대비 낮거나 변동이 없었지만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각각 0.12%포인트, 0.05%포인트 치솟았다.
은행권이 최근 비상 대응 조직을 속속 가동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나은행은 지난 2월 연체율 등 자산 건전성 관리를 위해 '리스크 관리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해 선제적 위험 관리와 취약 차주 연착륙 프로그램 지원에 나섰다. KB국민은행도 '금융시장·실물경제 복합 위기 비상 대응 협의체'를 운영하고 리스크 유형별 사전 점검을 통해 취약 부문을 선정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 금융 지원이 종료되면 차주들의 연체 리스크가 이전 대비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당국은 만기 연장·상환 유예 지원액 중 상환 유예 이용 차주 규모가 7%고 60개월 분할 상환이 가능해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존재한다. 해당 규모 역시 5.2조원으로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부실이 불가피할 때 당국은 30조원 규모인 새출발기금 등으로 정책 대응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새출발기금 신청 후 제반 심사 완료 뒤 채권 매입 절차가 이뤄지기 때문에 모든 차주들이 구제받는다는 보장도 없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도 최근 같은 우려를 내놓았다. 레나 쿽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와 권효성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시중은행이 하반기에 대출 연체 증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반기에 대출 연체율이 계속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연착륙 효과는 가능하나···판단 근거 면밀히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9월 코로나 대출 이자 상환 유예 종료 조치를 두고 연착륙 효과는 있을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금융위가 파악하고 있는 수치가 틀렸을 가능성과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배경이 중요하다고 경고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상환 유예자들이 저금리 대환을 받는 등 실제로 연착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금리 대환 재원이 정부 정책금융 등 세금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대환대출이 은의 대출 상품이라면 상관 없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되는 정책상품이라면 소상공인만 지원을 받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금융당국 통계가 과소 추계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중채무자 존재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채무자 수치가 몇 년 전 통계인데 바뀌지 않고 있다”며 “현재 금융당국에서 조사한 대출 잔액도 코로나19 당시 대출을 받은 금액일 뿐 그전에 받은 대출 중 만기가 도래한 것들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체율도 실제로는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몇 개월 전까지 은행 연체율이 역대 최소치로 매우 낮은 수준을 보였는데 과소 추계와 부실채권 상각을 고려하면 역대 최고 수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진 상명대 교수도 연착륙 효과는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교수는 “5년 분할 상환에 1년 이자 유예인 만큼 충격은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순차적으로 100조원 가까운 부실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데 이것을 5년에 걸쳐 분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교수는 그 판단 근거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현재 가장 큰 리스크인 주택담보대출 증가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주택가격 상승세에 따라 해결되는 양상으로 보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 문제가 심화되지 않고 지엽적 문제로 끝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국 판단과 달리 주담대와 부동산 PF 등 다른 대출 리스크가 터지면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경색은 금융기관에서 자금이 공급되지 않아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은행이 추가 대출을 줄이거나 고신용 차주에게만 대출을 내준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상환 유예 종료 조치가 적절했는지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9월 만기가 5조원 정도 된다고 하고 3개월 정도 부실률이 나온 뒤에 금융위 판단대로 충격이 없을지, 문제가 심화될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자영업자들이 받은 대출이 현재 부동산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가계대출에 안 잡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통계 파악이 정확하지 않아 상당 부분 중복됐을 것”이라며 “명확히 계산하면 가계대출이 위험 수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채 규모가 얼마나 쌓였는지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를 받은 사람들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당시 자영업자 지원책 성격인 대출과 그 만기 연장·상환 유예는 불가피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데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가 반복되면서 빚을 갚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사실상 넋 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현재 상환 환경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이 돈을 잘 벌어야 하는데 소비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서 매출이 줄어듦에 따라 부채 상환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들이 장사하면서 빚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체가 생기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컨설팅 등으로 갚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