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너와 내가 진짜 빛이 되어야 할 '光復'

2023-08-28 06:00

[이두수 작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거행된 통일실천결의대회에 참석했다. 행사 마지막 식순으로 광복절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이 노래를 부르며 광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위키백과에 보면 광복절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광복의 의미

광복절(光復節·National Liberation Day)은 영예롭게 회복한(光復) 날(節) 이란 뜻으로,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한반도가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을 경축하는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이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국경일로 지정되었으며 3·1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이다.

문제는 광복절에 대한 설명이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의 의미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독립기념일의 날이 같은 날이며 광복의 의미가 해방과 독립의 의미를 둘 다 함축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해마다 8월이 되면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놓고 이날이 해방일이냐, 독립일이냐 하는 논란과 함께 광복절이 몇 주년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그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통일’에 대한 의미까지 논쟁에 휘말린다.

광복의 의미를 ‘빼앗긴 주권을 회복한 날’로 본다면 그날은 언제일까?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한반도는 일제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즉시 38선을 경계로 한반도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다. 주권이 일제에서 우리에게 넘어 오지 못하고 미.소군정에 넘어간 것이다. 남한에서는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 선출 - 5월 30일 제헌의회 소집 - 동 의회가 7월 17일 헌법 제정 - 7월 24일 그에 따라 초대 대통령이 선출 - 그의 주도로 8월 4일까지 행정부가 수립되어  비로소 8월 15일에 해방의 기쁨도 함께 경축하는 의미에서 이날에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선포식을 하게 되자 비로소 미군정이 주권을 이양하고 물러갔다. 이렇게 보면 일제에서 해방되었다고 ‘광복’된 것이 아니라 미군정이 종식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비로소 ‘광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광복절을 국경일로 정하게 된 배경을 보면 광복절 제정 이유가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경축하며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 발전을 다짐하기 위함이다'.
 
독립을 위한 노력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은 첫 번째 국제회의는 1943년 11월 27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이다. 미국, 영국 그리고 중국이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한국을 독립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 대표인 장제스가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지만 미국은 그것을 중국의 위임통치 야욕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선언문에는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기에’를 ‘적절한 시기에’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적절한 절차로’라는 문구로 바뀌어 국제신탁통치의 여지를 남겼다.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지 못하고 힘 있는 나라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런 처지에 있었지만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독립을 시켜준다는 말에 환호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국제법적으로 독립을 처음으로 보장받은 조약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이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청에 대해 조선의 독립을 조약 제1조항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
‘제1조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주독립을 훼손하는 청국에 대한 조선국의 공헌(貢獻)·전례(典禮) 등은 장래에 완전히 폐지한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는 1884년이다. 조선이 근대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신분제를 타파하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를 철폐하고 입헌군주제를 통한 독립국가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청국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다. 이후 10년 만인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갑신정변 주역들이 사면·복권되면서 청과 사대관계를 정리했다. 그 상징적인 건축물이 독립문이다. 독립문이 서 있던 자리는 조선 초기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 있던 자리였다. 독립문은 과거 봉건시대를 청산하고 서구식 근대화를 따를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 이 독립문을 세우면서 시민교육과 계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독립협회다.
이러한 선각자들의 노력도 국가적 비전이나 국민적 합의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개혁도 지속할 수가 없다. 실제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이용해 왕권을 유지하려 했고, 아관파천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나름 독립국임을 내외에 선포했지만 국제적 역학관계를 해결할 힘이 없었다. 국민 지도자라고 하는 지방 유생들은 위정척사를 내세우며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신분제 옹호와 이를 포장하기 위해 외세 배척이라는 깃발을 들었다. 이런 혼란을 겪다가 나라는 결국 일본에 합병되고 만 것이다.  
 
해방, 독립, 광복, 그리고 통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해방, 독립, 광복에 대한 개념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이런 현상이 수습되지 못하고 혼란이 계속되는 그 원인적인 부분을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의 시각이다. 세계의 근본은 물질이며 물질로 통일되어 있다는 유물변증법은 자연이나 사물현상을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로 설명한다. 대립물들이 한 사물현상 안에서 서로 다른 것의 존재의 전제(의존)가 되는 관계를 통일이라고 하며 서로 다른 것의 존재를 부정(배척)하는 작용을 투쟁이라고 한다. 존재의 구성물이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 존재·발전한다고 보며 역사의 발전 과정이나 오늘날 사회의 변화·발전도 이 시각에서 해석하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의 노사 문제, 교육 문제, 역사 문제, 의료 문제 심지어는 남녀 문제도 다 이런 시각에서 보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성상(내적인 성격)과 형상(외적인 형태)으로 존재하고 이 두 요소는 차원은 다르지만 서로 닮았고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두 요소는 서로 닮은 면이 있기 때문에 조건에 따라 가깝게 때로는 멀게 관계하며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을 갖추느냐에 따라 그 관계성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 두 존재를 대립물이라 볼 수 없으며 존재는 투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관계성에 따라 발전과 퇴보를 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과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의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광복이라는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것을 내부적 민족 문제로 보느냐, 지정학적 이슈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북 분단은 우리가 원치 않은 상황이었으며 이걸 해결하는 것은 남북의 당사자들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축을 이뤘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한반도 상황이 국제적 상황이나 국내 위상 부분에서 더 이상 민족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민족 문제와 지정학적 이슈를 같이 엮는 일종의 그랜드 디자인 혹은 대전략에 우리 사회가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개인의 독립이라는 측면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개인의 해방은 인권의 문제이며 개인의 독립이란 자존감의 회복이며 열등감의 극복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은 결국 개인을 어떻게 보고 대하느냐의 문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주보다 귀한 고유한 개인의 가치 회복은 기독교적 소명의식의 회복이며 유교에서 말하는 천명의 자각이다. 근대 시민운동의 효시라고 할 동학의 사인여천(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이며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슈(초인·넘어선 사람)의 각성이다.
자기의 고유한 개성과 삶의 철학을 겸비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헌할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을 갖춘 시민이 되는 것이다. 광복절 노랫말처럼 ‘세계와 하늘에 닿을 자신을 빛내는' 것이다. 이 노랫말은 일제하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타고르의 시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으니 동방의 밝은 빛이 되어 하늘에 닿을 때까지 힘써 나가자는 결의가 느껴진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光復, 너와 내가 진짜 빛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림 설명]
인간이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걸을 때 그의 삶이 시작되고
힘이 없어 걷지 못하게 될 때 그의 삶은 끝나는 것이다.
인간은 걷는 것에서 문화와 문명을 창조했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빛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빛을 발하는 것이 자주, 독립, 해방, 통일이다
[이두수 작가 제공]
 

 

필자 소개 -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