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새로운 30년' 출발점에 선 한·중 관계
2023-08-24 06:00
한·중 수교 31주년을 맞이하며
얼마 전 베이징에서 중국의 동부 연해지역 지방 도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을 만났다. 한국서 석박사까지 마친 '한국통' 인재인 그는 한·중 관계 앞날을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지 30년이 된 한국 도시와 올 초부터 경제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기 위한 업무에 공들여왔는데, 결국 최근에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한·중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상부에서 중단하라는 '암묵적 지시'가 내려왔다며, 한국 대신 다른 동남아 국가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양국 관계는 적어도 관계 개선의 의지는 내비쳤다.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수교 기념행사가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따로 열리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축하 메시지를 교환하며 우호를 다졌다.
하지만 올 들어 한·중간 비자 갈등,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발언 논란,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내정간섭 발언 논란 등 한·중간 문제가 잇달아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양국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했다. 특히 양국간 대부분의 문제가 미·중 패권 경쟁에 영향을 받는 등 오늘날 한·중 관계가 미중 패권경쟁의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최근 대중 무역적자 고착화, 탈(脫) 중국 움직임 속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며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탈동조화)'이나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중간 지정학적 갈등, 중국 경기둔화 등도 이유겠지만, 사실 근본적 원인은 자동차, 스마트폰, 화장품 등 그간 '수출 효자' 노릇을 했던 우리 제품 경쟁력이 떨어져 중국 시장 비중이 줄어든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도 '상위 1%' 초격차 브랜드인 테슬라, 애플, 스타벅스 등 미국 기업 브랜드는 중국서 여전히 잘나간다.
그만큼 중국이 가진 경제적 위상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전기차·배터리·스마트폰·반도체·명품·영화·관광 등의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 여전히 우리의 이웃나라, 중국이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이 사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바뀌기 힘들다. 우리로선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해법을 모색할 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넉달 사이에 중국 기업들이 한국 측과 손잡고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건수만 5건(총 40억 달러)에 달한다. IRA 제재를 피해 한국 시장을 활용해 유럽·북미·일본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과 이차전지 소재나 기술 방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이 필요한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수교 이후 31년간 한·중 관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변했다.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 비교해 우위를 상실하면서 중국은 예전처럼 한국 기업을 우대하지 않으며, 공동부유·쌍순환·중국식 현대화 같은 자국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로서도 정치나 이념보다는 실용주의에 기반한 대중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
때마침 중국이 한국 단체관광을 개방하고 한·중 페리 운항이 재개되는 등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갈등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막혀있던 양국간 교류가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이 서서히 형성되는 분위기다. 한·중이 갈등을 봉합하고 미래 30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