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골프장 속으로] ① PGA 투어 선수들이 달려간 노스 베릭 웨스트 링크스
2023-08-13 09:30
영국 골프 유랑기
대회장(르네상스 클럽)에서 차를 타고 13분(7.5㎞) 거리에 있는 노스 베릭 웨스트 링크스(파71·6509야드)로다.
골프장에 도착한 이들은 캐디도 없이 스스로 손 카트를 끌며 골프를 즐겼다. 아름다운 코스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다.
이들은 바로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 리키 파울러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도 라운드를 멈추지 않았다. PGA 투어와 DP 월드 투어가 쫓아가서 이를 조명할 정도였다.
스피스는 "손 카트를 직접 끌면서 18홀을 돌았다. 처음에는 몇 개 홀만 플레이하려 했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마지막 5~6개 홀을 정말 대단했다.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감탄했다.
맥스 호마는 그런 스피스가 부러웠다. 호마는 "나는 스코틀랜드 골프장을 좋아한다. 노스 베릭 웨스트 링크스는 굉장한 곳이다. 그곳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프로골퍼들이 애정을 쏟는 이 골프장은 1832년 만들어졌다. 올해는 191주년이다. 세계에서 13번째로 오래된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사용하는 클럽은 노스 베릭 골프클럽 등 5개다.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이 달아오르던 토요일 이른 아침. 차를 끌고 노스 베릭 웨스트 링크스를 방문했다. 티 타임을 잡지 않아, 노스 베릭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다가가니 담당자가 인사를 건넸다. 문을 열자 역사가 펼쳐졌다.
이어 관리자는 카트리나 매슈 라운지로 안내했다. 매슈는 2019년 명예 회원이 됐다. 매슈는 여자 대회가 열리는 위 코스(Wee Course)에서 골프를 배웠다. 평소에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관리자는 "매슈의 어머니가 클럽하우스 2층에서 회원들에게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노스 베릭 골프클럽은 세계 최초로 여성 골퍼를 허용했다. 반면 정회원 가입은 2005년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의 명예 회원은 큰 의미다.
한참 설명을 듣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 관리자에게 "코스를 둘러봐도 되는지"를 물었다. 단박에 거절 당했다. "대회를 앞두고 예약이 꽉 찼다. 매우 바쁜 상황"이라면서다.
세이어스는 노스 베릭을 대표하는 골퍼다. 16세까지 곡예사로 활동하다가 골프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골프도 골프지만 골프공 제작자로도 유명했다. 현재까지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골프용품이 나올 정도다.
세이어스는 160㎝의 단신임에도 골프 대회에서 24승을 쌓았다. 우승때마다 곡예사의 끼를 발휘했다. 단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는 끼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880년부터 1914년까지 줄곧 출전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그런 그에게는 '디 오픈에서 우승하지 못한 최고의 골퍼'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세이어스는 왕족과 귀족을 가르쳤다. 여왕, 왕자, 공주 등을 가리지 않았다.
세이어스는 노스 베릭 웨스트 링크스 레이아웃 수정에도 도움을 줬다. 처음 이 코스는 18홀이었지만 총 전장이 4841야드(4426m)에 불과했다. 한 비평가는 "조작된 9홀 코스"라고 조롱했다. 이후 수 차례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카트를 타고 코스에 진입했다. 처음 멈춘 곳은 13번 홀, 별명은 '더 핏'. 코스 중간에 벽이 있다. 그린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벽을 넘어야 했다. 놀라운 모습이었다. 벽 뒤에는 아름다운 해안가가 펼쳐져 있었다. 신사는 "벽을 이용한 운 좋은 플레이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구처럼요?"라고 물으니 껄껄 웃기만 했다.
보물섬처럼 생긴 피드라와 배스 록을 구경하며 15번 홀 '르단'에 도착했다. 파3 홀이다. 그린 뒤 병풍처럼 서 있는 낮은 벽이 만리장성처럼 보였다. 프랑스어인 르단은 v자형 방비벽을 뜻한다. 해안 요새화를 위한 방어막이다. 중간 언덕과 길쭉하게 자리한 비아리츠 벙커가 골퍼를 위협했다. 두 명의 골퍼가 티잉 구역에서 앞 팀의 홀 아웃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사와 골퍼들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한참을 대화하더니 "먼저 해볼래요"라고 권했다. "좋지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손사례를 쳤다. 그랬더니 한 골퍼가 자신의 채와 공을 줬다. 티는 신사의 카트에서 챙겼다. 화이트(백) 티 기준 거리는 190야드(173m). 왼쪽에서 해풍이 불어왔다.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엉터리 스윙과 함께 날아간 공은 오른쪽 벙커에 빠졌다.
당황한 표정과 함께 티를 빼 들었다. 그 모습이 썩 재밌는지 껄껄 웃었다. 웃던 골퍼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표정을 바꿨다. 다른 골퍼마저 긴장했다. 표정이 분위기를 억눌렀다. 골퍼는 힘차게 스윙했다. 전형적인 히터였다. 공은 왼쪽으로 출발해 바람을 타고 비아리츠 벙커를 지나 깃대 근처에 떨어졌다. 아름다운 페이드 샷. 그는 세상을 다 갖은 표정을 지었다. 중압감을 이겨낸 골퍼의 환희였다. PGA 투어 선수들이 라운드를 멈추지 못한 이유는 '르단'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