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범 잇단 '중형'에도 웃지 못하는 피해자들..."대출금에 허덕"

2023-08-16 10:26
'범죄단체조직' 혐의 적용 받지 못해...'빈틈'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31일 오전 대전시청 앞에서 대전광역시 전세 사기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범들에 대해 잇달아 '중형'이 내려지고 있는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액 보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빠른 범죄 수익 환수를 꾀하고 있지만, 전세사기의 경우 일반 사기죄가 적용되는 탓에 몰수·추징이 이뤄지지 않아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이준구 판사)은 지난달 '세 모녀 전세사기단'의 주범인 김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2017년부터 두 딸의 명의로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등 수도권 일대 빌라 500여 채를 전세를 끼고 사들인 뒤 분양업자, 컨설팅 업체 등과 공모해 세입자를 구한 후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세 모녀 전세사기단'에 당한 피해자는 85명, 피해금액은 183억원에 이른다.
 
김씨에게 적용된 법조는 형법상 일반 사기죄. 재판부는 "전세사기 범행은 서민층과 사회 초년생들이 피해자로 삶의 밑천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법정 최고형인 10년을 선고했다. 검사의 구형량도 이와 같았다. 선고 직후 김씨는 법정에서 쓰러져 재판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날 피해자 측 변호인은 중형 선고를 환영하기보다 "피해자 재산 회복에 대한 입법권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억원대 피해를 입은 임모씨(42)도 “국가에서 김씨와 딸들의 전 재산을 환수해서라도 피해자들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며 "반지하에서 시작해 모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잠도 못 자고 대출금 갚느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빠른 범죄수익 환수로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해 몰수·추징보전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모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아우르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은 범죄 피의자의 범죄 수익을 확정판결 전에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몰수·추징 대상인 범죄 수익이 자금 세탁 또는 재투자로 환수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경찰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세사기 2차 특별단속에서 전세사기 10개 조직에 대해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최초로 적용했다.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일반 사기 범죄와 달리 범죄단체의 조직적 사기범죄에 대해선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1~6월) 동안 전세사기 범죄에 172억7000만원을 몰수·추징보전했다. 범죄수익은 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오면 피해자들에게 반환된다.
 
다만,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되지 않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 회복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주범 김씨를 포함한 '세 모녀 사기단' 일당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최민혜 판사)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해당 사건은 사기 및 부동산실명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몰수·추징보전 제도를 적용받지 못했다. 세 모녀 사기단의 피해자들은 경매를 통해 개인적으로 피해액을 보전하거나 경매가 여러 번 유찰돼 피해를 보전하지 못하고 대출금 반환에 허덕이고 있다.

‘전세사기 범죄’ 피해자 구제에 빈틈이 생긴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 전세사기 범죄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강석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기죄도 피해재산 환수 및 피해자에게 환부가 가능하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