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여는 열쇠 … '혁신생태계'

2023-07-26 15:39

[정연승 교수]


 
실리콘밸리가 미국 산업의 혁신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창업가와 인재들, 풍부한 투자자금 그리고 창의와 도전 정신으로 구성된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 특성은 그동안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세계 최고의 빅테크들을 탄생시켰으며 지금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하고 성장하는 배경이다.

인도는 작년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으며, 팬데믹 기간 중에도 경제가 고성장하였다. 인도는 자국의 우수한 기술 인재, 미국과 연계한 글로벌화 그리고 효율적인 금융투자 환경을 배경으로 실리콘밸리 모델을 도입하여 성공적인 혁신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여기에는 2016년부터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시도한 인도 정부의 혁신산업 정책이 큰 역할을 하였다.
 
최근 정보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으로 혁신 생태계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업 성장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이를 통해 단일 기업이 창출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혁신정책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스템 관점보다는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 시스템 관점이 지식의 창출·확산·활용을 위한 구성요소의 강화에 집중한다면, 혁신 생태계 관점은 보다 강한 연결성, 진화의 지속성, 지역 밀착형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제롬 엥겔 UC버클리대 교수는 혁신 생태계, 즉 혁신 클러스터(Cluster of Innovation)하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자본·지식·인재·기술 자원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비즈니스 모델 주기의 단축으로 끊임없는 비즈니스 기회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우리도 혁신 생태계의 본질을 재인식하고 혁신 생태계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정부는 지자체별 기업혁신생태계 복원 전략을 통해 활발한 창업과 혁신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지역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전 국민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대기업 본사와 20위권 대학의 90%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이로 인해 지방 인구 유출 가속화, 기업의 탈지방 러시, 지방 대학 위기가 이어지며 지역의 혁신 역량이 지속적으로 저하되면서 지역의 공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 중심의 첨단 ICT산업의 부상으로 지역에 기반한 전통 주력 산업이 위축되고 지방 대기업 본사가 수도권으로 이전함으로써 지역경제의 존립 기반이 무너져 왔다.

이제는 특정 산업과 소수 대기업에 집중된 기존 지역산업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 기업 주도의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 지역의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의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별 여건과 특성에 따른 자금의 배분과 지원 기업 선정되어야 한다. 지역이 주도하는 지역경제 성장모델을 추진하고, 중앙정부와 지역혁신기관이 이를 뒷받침하여 지역의 자립 성장,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최근 발족한 지방시대위원회가 검토 중인 기회발전특구는 지자체가 자체 성장전략에 맞는 특구를 선정해 특화 산업을 결정하고 투자사항을 책정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이다. 여기에 정부의 전폭적인 세제 지원이 더해진다면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도 혁신기업 생태계를 이끌 선도적 공간이 필요한데, 기회발전특구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 모델의 지방 이식도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한 판교 테크노밸리의 성공은 한국의 인터넷, 게임 및 ICT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기업 집적과 함께 정주 여건 확보로 판교 테크노밸리는 최고의 기업도시로 성장했다. 지자체도 권역 내 일정한 구역 내지 신도시 등을 대상으로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한 테크노밸리 모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기능 재정립과 역할 강화도 필요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기업이 참여함으로써 지역별 주력 산업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현재는 일반적 창업업무, 일자리 지원 등으로 성격이 변하였다. 향후 지역 혁신 생태계 복원의 중심적 역할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부여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 대학들의 적극적 참여도 중요하다. 최근 침체를 겪고 있는 지방 대학 캠퍼스 내에 스타트업·벤처의 인큐베이팅 및 성장거점을 조성함으로써 지방 대학과 기업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 내에 기업과 주거, 여가가 결합된 새로운 혁신 캠퍼스 개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Apple University 같은 혁신적인 기업대학 개념을 지역 대학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도 지역 혁신 생태계의 중요한 과제다. 역사·문화 등 지역 정체성에 바탕한 동네 단위 로컬 브랜드의 성공은 지역 생태계 활성화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새로운 지역 주도 성장모델로 골목상권 산업과 라이프스타일 산업 등 지역의 콘텐츠와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지역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지역 주도의 창의·혁신·창업 거점을 조성하고 관련 기업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해 지역경제가 성장하고 민간 기업을 통한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 주도로 지역의 혁신 기반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역 고유의 ‘기업 생태계+지식(기술) 생태계+사회혁신 생태계’ 조합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혁신 생태계가 조성되고 역동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 지방시대위원회가 본격 출범하면서 지역 산업 발전, 지역 혁신 역량 강화와 관련한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방정부는 혁신을 위한 인적·물적 환경의 조성과 함께 기업의 창의와 혁신 분위기를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혁신 생태계 요소들을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연결하고 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과 혁신클러스터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도 중요하다. 혁신 생태계는 혁신 주체와 인프라뿐만 아니라 제도, 문화, 거버넌스의 유기적 결합체로 혁신의 질적 상호작용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에 의해 그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그동안 정부가 기업 생태계 조성을 하드웨어적으로만 접근한 한계를 극복하고 이제는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번 강조한 “국민이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의 실현은 결국 기업 혁신 생태계의 복원에 달려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지역 인재가 협력해 건강한 지역 혁신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혁신 국가로 도약하고, 그 속에서 업그레이드된 지방정부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경제대학 교수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 한국경영학회 산업정책위원장 △ 전 한국유통학회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