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영상 유통채널 된 유튜브·SNS...AI로 막았다지만 '뒷북 대응' 논란

2023-07-23 19:00
영상 본 이용자 트라우마 호소
해외선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테러 이후 영상 유출 경각심 커져...AI 필터링 본격화
메신저 통한 은밀한 유포에는 속수무책...경찰 "반복 공유하면 형사처벌"

[사진=유튜브 갈무리]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 영상이 유튜브·SNS·메신저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구글과 페이스북 등 관련 업체의 '뒷북 대응'이 논란을 빚고 있다. 잔인한 영상이 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반복되고 있어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해당 업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 CCTV' 등 제목으로 유포된 이번 사건 영상을 접하고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SNS 플랫폼은 이용자가 영상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 재생되도록 설정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영상에 노출되는 사례마저 생기고 있다. 권기현씨(38·서울 강동구)는 "카카오톡에 올라온 링크를 통해 유튜브에서 사건 영상을 봤다"며 "영상이 지나치게 충격적이서 자꾸 머릿속에 맴돌고 걷다가도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긴 이 영상은 인근 가게 CCTV에 찍혔다. 최초 유출자는 해당 가게 직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영상 유출이 폭력적 영상 조기 필터링을 위한 국내외 사업자들의 노력 확대와 함께 영상을 SNS·메신저로 무분별하게 배포하는 것은 범죄 행위임을 이용자들이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에서는 2019년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테러 사건 이후 폭력적 사건 영상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당시 총기난사 테러로 51명이 죽고 49명이 다쳤는데 범인들은 대담하게도 범행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함으로써 전 세계 이용자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생중계는 17분 만에 중단됐지만 녹화된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됐다. 페이스북은 24시간 동안 영상 복사본 150만건을 삭제해야 했고 유튜브는 영상 노출을 막기 위해 검색 기능을 막아버리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건은 유튜브·SNS에 사람보다 대응 속도가 훨씬 빠른 인공지능(AI) 필터링이 본격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AI 필터링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성적 영상은 빠르게 차단하지만 폭력적 영상은 다소 느리게 차단하는 문제를 지적받고 있다. 실제로 이번 신림동 사건 영상도 AI가 해당 영상이 유해함을 인식한 이틀 후부터 본격적으로 차단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전까지는 이용자가 영상을 신고하면 노출을 막는 형태로 느리게 차단됐다.

더 큰 문제는 신림동 사건 영상이 유튜브·SNS보다 파급력은 작지만 찾아내기 힘든 메신저를 통해 은밀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용자가 카카오톡으로 공유하는 영상은 필터링할 수 없다"며 "단체 대화방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톡은 경찰 수사를 통해 유포자를 찾을 수 있지만 텔레그램 등 제도권 밖에 있는 비밀 메신저는 이마저도 어렵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신림동 살인사건 범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범행 영상을 메신저 등을 이용해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도달하게 하는 행위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처분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