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人사이트] 정의선 회장, 돈 안 되는 고성능 'N' 공들인 이유는

2023-07-22 05:00

현대자동차 N은 BMW의 ‘M’,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등을 겨냥해 탄생한 고성능 브랜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N 브랜드 개발 단계부터 마무리를 직접 챙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달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N'이 마침내 공개되면서 정 회장이 '짜릿한 운전의 재미를 주는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다.

그간 현대차는 경쟁 브랜드와 달리 고성능 브랜드를 가지지 못했다. 벤츠와 BMW는 각각 고성능 브랜드인 AMG와 M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100년에 이르는 역사를 거치면서 엔진, 파워트레인 개발 기술을 축적해왔고, 이를 레이싱 대회 F1에서 고성능 기술 시연을 거쳐 양산 차량에 접목해왔다. 고성능차는 고출력 엔진, 경량 차체, 고강도 섀시, 공기 역학, 무게 중심, 시트 등이 융합된 기술의 집약체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고성능차 개발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자동차를 만든 역사가 짧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고성능 모델이 없었다. 무엇보다 고성능차나 모터스포츠는 완성차 업체에서 흔히 말하는 '당장 돈 안 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쉽게 개발에 뛰어들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성능차 개발이 필수”라며 고성능차 개발을 최종 결정했다. 현대차가 몸집을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고성능 차량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성능차는 즉 브랜드의 역사와 기술력을 뜻한다. 고성능차를 두고 정 회장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정 회장은 고성능차에 대한 갈증 해소를 위해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개발한 차량을 직접 시승한 뒤 시승평을 연구진에게 전달하는 등 개발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개발 중인 N 차량을 정 회장이 직접 남양연구소 서킷에서 시속 250km 이상의 속도로 시운전한 일화도 전해진다.

특히 정 회장은 인재 영입을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서는 등 과감한 면모를 보여줬다. 2014년 BMW M 사업부문 연구소장 출신인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사장을 전격 영입, 남양연구소에 별도의 고성능차량 개발팀을 신설하고 수장으로 앉혔다. 2018년에는 BMW M 북남미 사업총괄 임원 출신 토마스 쉬미에라를 고성능사업부 부사장으로, 2019년 포드의 고성능 RS 브랜드 수석 엔지니어 출신인 타이론 존슨을 유럽기술연구소 디렉터로 불러오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달 공개된 N브랜드 최초의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N은 정 회장에게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그간 현대차가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아이오닉 5N에 모두 집약됐기 때문이다. 즉 아이오닉 5N은 고성능차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뚝심과 의지의 결과물인 셈이다. 

정 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최대 자동차 축제인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에 직접 참석해 아이오닉 5N이 최초 공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사 내내 만족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알버트 비어만 고문도 그렇고 우리 팀이 노력을 정말 많이 해줬다"며 "모두 재밌게 일하며 만든 차여서 더 좋고, 연구원들 자부심이 대단해서 더 기분 좋다"고 말하며 N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현대차가 과거 N을 개발한다고 했을 당시 나왔던 시장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킨 순간이었다.

정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현대차의 고성능차 기술은 빛을 발하고 있다.  2019년에는 WRC 참가 6년 만에 한국팀 사상 최초로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모터스포츠 무대 정상에 우뚝 섰다. 다음 해 WRC에서도 다시 한번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거머쥐며 고성능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고성능차를 향한 정 회장의 집념이 스포츠카 양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현대차 장재훈 사장이 아이오닉 5 N 월드프리미어가 열리는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