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각자도생의 세계 …'다초점 물밑외교'로 전환해야
2023-07-21 05:00
한국전과 우크라이나전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이 있다. 한국전으로 인해 구냉전이 시작되었듯이 우크라이나전으로 인해 신냉전 구도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70년 전 한국전쟁이 마무리될 무렵 국제 정세는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많이 바뀌었다. 한국전으로 인해 냉전이 본격 시작되고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확연하게 분리되었다. 우크라이나전쟁도 민주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분리를 촉진해 양 진영 간 간극이 확연히 벌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두 전쟁에 대해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한국전에 대해서는 개전 책임에 대한 명확한 국제적 컨센서스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당시 국제 정세가 미국 주도로 이루어졌고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전에 대해서는 개전 책임은 러시아에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판단이 다르고 지금은 한국전 당시와 달리 미국 주도로 국제 정세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대응에 차이가 난다. 즉, 1950년에는 미국이 전 세계를 주도하는 패권국 위치에 있었고 당시 미국의 국력은 더욱 팽창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미국의 패권이 쇠락하는 과정에 있어 각국이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여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국제 정세하에서 우리의 동맹인 미국에 우리 안보의 모든 것을 맡겨 놓아서는 위험하다. 물론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근간이며 양국 간 안보연대는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각국이 각자도생을 위하여 자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다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도 미국에만 초점을 두고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식으로 외교를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월 말 이코노미스트지와 인터뷰한 키신저 박사는 지금 국제 정세는 1차 세계대전 이전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 각국은 군비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자국 안보를 위하여 다른 나라들과 비밀 동맹도 체결하는 등 합종연횡을 하는 데 몰두하다가 결국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각국의 외교는 자국과 동맹을 이미 맺은 나라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 신경을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자국이 모르는 사이에 서로 모종의 동맹이나 비밀조약을 맺을까, 그리하여 자국의 안보 환경이 갑자기 급변하지 않을까를 파악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금 국제 정세가 1차 세계대전 전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외교 수행 방식도 이에 맞춰 변경되어야 한다. 즉, 한·미 동맹을 우리 안보의 근간으로 강화하되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과도 안보 협력을 모색하고 한·미 동맹을 넘어 우리만의 전략적 자율성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즉 인도와 일본이 어떻게 러시아와 물밑 거래를 하고도 미국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우디는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어떻게 미국의 관심을 더 끌고 있는지, 또한 이스라엘은 미국과 맹방이면서도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고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지 우리는 관심을 갖고 분석해 보아야 한다. 심지어 우리 동맹인 미국이 왜 최근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과 거시경제에서 협력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국 고위층들이 연이어 베이징을 방문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외교 수행 방식도 미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와 양자 외교에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 나라가 다른 나라, 즉 제3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그래서 그런 현상들이 나중에 국제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우리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의 주시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단초점 외교에서 다초점 외교, 양자 간 외교 중심에서 다자간 외교, 3국 간 외교 쪽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등 뒤나 발밑에서 진행되는 각국의 숨 가쁜 각자도생의 외교경쟁이나 결집을 눈치채지 못하고 안이하게 있다가 갑자기 큰 변고가 발생하면 상황 파악을 못하고 허둥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 외교는 카드게임에 비유하면 펼쳐진 패를 보고 하는 게임이고 제3국 외교, 비밀외교 등은 숨겨진 카드가 무엇인지 추측을 하면서 하는 더 고난도 게임이다.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각국은 다른 나라들이 자신의 등 뒤로 어떤 나라와 어떻게 손을 잡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치열한 첩보전, 스파이전을 펼쳤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외교공관과 해외정보 주재원, 무관들의 활동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뀌고 전문성도 보강되어야 한다. 우리 재외공관이 단지 본부와 주재국 간 연락 창구 역할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우리 국익을 위한 정보 수집의 최전선 기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전 프러시아 재상 비스마르크는 보불전쟁에 패한 프랑스가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프러시아를 양 방면에서 압박하자 러시아와 비밀조약을 맺는다. 아프가니스탄 진출 문제로 영국과 날카롭게 대립하던 러시아로서는 독일이라는 우군이 필요하였고 독일은 프랑스와 재충돌 시 러시아의 중립이 필요하였다. 이런 비밀동맹이 맺어진 줄 프랑스는 알지 못하고 러시아를 든든한 동맹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였다. 또한 독일·오스트리아와 동맹이었던 이탈리아가 런던조약이라는 비밀협정을 맺고 전쟁이 발발하자 원 동맹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편이 아닌 적국인 영국·프랑스 편에 서서 참전을 한 것은 비밀외교, 이중동맹 외교의 압권이다. 최근 들어서는 호주가 미·영과 AUKUS 협약을 맺으면서 프랑스와 잠수함 건조계약을 파기한 것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전격 외교 사례에 해당한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마타하리와 조르게라는 거물 스파이 외에 많은 이중 스파이들이 상대국의 숨겨진 의도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암약하던 시기였다. 키신저 박사의 말처럼 지금 정세가 1차 세계대전 이전과 유사하다면 다른 국가들은 이미 이런 물밑외교와 첩보전쟁에 돌입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만 순진하게 양자 외교, 일편단심 외교에만 몰두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변주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