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청천벽력 같은 사망소식에 유족들 오열...논 잃은 농민들 분개

2023-07-16 16:53
"부실한 모래 제방이 원인"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시신으로 발견된 실종자를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차가운 물 속에 (어머니가) 계셨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궁평 제2지하차도 실종자 가족 박모씨)

16일 오후 폭우로 차량 15대가 잠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사망자가 하나 둘씩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끝내 터져 나왔다.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께 궁평 제2지하차도를 지나던 차량 15대가 인근 미호강에서 유입된 물에 잠겼다. 

청주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기다리던 박씨는 "어머니가 왜 하필 그 버스를 탔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절규했다. 평소 502번 버스를 타던 어머니가 이날 따라 747번 급행버스를 탄 것도 아들의 가슴을 옭아맸다. 747번 버스는 침수된 도로가 통제되자 문제의 지하차도로 우회했다가 침수 사고에 휘말렸다.

경찰의 폐쇄회로(CC)TV 분석에 따르면 버스 1대, 트럭 2대, 승용차 12대가 지하차도에 갇혔다. 실종상태인 버스 탑승객들의 다른 가족도 밤새 발을 동동 구르며 현장 소식을 기다렸다. 실종자의 딸 최모씨(42)는 "현장 구조대원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전해들었다"면서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을 엄마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흐느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인한 사상자는 사망 9명, 부상 9명이다. 사망자는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충북대병원, 청주성모병원, 하나노인병원에 장례식장이 마련됐다. 당국은 배수·수색작업 끝에 지하차도 수면 위 1m 공간을 확보, 오전 7시께부터는 잠수부를 투입해 실종자를 찾고 있다. 특전사 등 인력 399명과 장비 65대가 투입된 상태다.   
 
7933㎡ 논 모두 잠겨...1년 농사 망친 농민들 "모래 제방이 낳은 인재"
 
16일 오후 3시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인근 비닐하우스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물이 절반가량 잠겨 있다. 비닐하우스의 주인 A씨는 “속이 뒤집어지니 말도 꺼내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진=백소희 기자]

“논 7933㎡(2400평)이 다 잠겼어요” (박모씨, 90)
 
수위가 낮아지면서 인근 농부들의 시름어린 표정도 드러났다. 오후 2시께 궁평 제2지하차도 인근 비가 잦아들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돈되면서, 주변 주민들이 피해 현장을 살피러 하나 둘 모였다. 오래된 오토바이를 끌고 현장에 나온 박모씨(90)도 그중 하나다. 그는 “피해는 말도 못하지. 주변 주민들 모두 간밤에 학교에서 지샜어”라며 손을 내저었다.
 
2층집에 거주하는 박씨는 사고는 피했지만, 키우는 농작물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그는 “피해가 잠잠해지니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봤는데 논 2400평이 다 잠겼다”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아흔 평생 이곳에서만 살았다는 그는 “이런 피해는 전에 본 적 없다”고 전했다.

하우스 농가도 수해를 피하지 못했다. 지하도로로 진입하는 도로 인근에 위치한 오이 농가를 운영하는 A씨는 “속이 뒤집어지니 말도 꺼내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비닐하우스 내부에는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은 채 반쯤 잠겨 있었다. 주변에는 재배를 하다 만 오이가 한두 박스 널부러져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불과 600m 반경에서 1045평 규모의 감자, 옥수수 밭을 하는 70대 윤모씨 가족도 밭을 구르며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윤씨는 “내일 피해 상황 조사가 나온다고 해서 미리 와서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의 아들은 가슴께에 손을 갖다대며 “거의 150cm정도 물이 들어찼다고 보면 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윤씨 아내의 안내에 따라 밭 앞의 작은 컨테이너 집 내부에 들어가자 수해로 인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아내는 “이 안에도 물이 다 들어차 있었으니 사람 키를 넘어서는 농작물들도 다 물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 모자는 겨우 건진 마늘 한 박스 손질에 한창이었다. 윤씨 아내는 "보상은 둘째 치더라도 피해 복구만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윤씨는 “단순히 비가 많이 와서 제방이 무너진 게 아니라 공사를 잘못한 것”이라며 “제방을 모래로 쌓았으니 비가 적당히 오던 지난해에는 견뎠지만 올해는 무너진 것”이라고 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