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대중국 투트랙 노선 재확인…"디커플링은 불가...안보는 양보 없어"
2023-07-09 17:39
반도체·광물 제재 철폐 위해 시간 필요할 전망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대중국 투트랙 노선을 재차 확인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구하지 않고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안보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 간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줄어들었으나 반도체와 광물 제재 등 현재 대치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美·中 "디커플링은 양국에 재앙···세계 경제 불안정하게 만들 것"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CNN 등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방중 마지막 날인 이날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디커플링은 (미·중)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실상 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커플링과 공급망 다각화를 통한 디리스킹(위험 제거)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미·중 양국이 갈등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옐런 장관은 "미국과 중국은 상당한 이견이 있다"면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미·중 관계를 강대국 간 갈등이라는 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양국이 모두 번영할 만큼 세계가 충분히 크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해당 표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관계에 대해 써 온 것으로 중국에 유화적인 자세로 풀이된다.
옐런 장관의 이번 방중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와 중국의 원자재 규제 맞대응으로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에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 목적이 중국 경제팀과 관계를 다지고 오해로 인한 위험을 줄이는 데 있다"고 소개했다. 옐런 장관은 이번 방중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허리펑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장관) △판궁성 인민은행 신임 당 서기 등 중국 새 경제팀 핵심 인물들과 총 10시간에 가까운 개별 회담을 했다.
미·중 양국은 옐런 장관과 중국 경제 라인 간 회담이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옐런 장관은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며 생산적인 대화"라고 평가했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심도 있고 솔직하며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 미국 "선별적 조치 계속 할 것" vs 중국 "안보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안 돼"
하지만 이번 방중에도 양국 관계가 실제적으로 개선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미국이 주장하는 안보 문제가 양국 관계에 주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미국은 국가 안보와 동맹국 이익을 위해 '선별적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조치는 투명하고 범위가 좁으며 명확한 목표(국가 안보)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수출 통제를 비롯해 각종 대중 기술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예로 미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장비 등에 대해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옐런 장관은 중국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확대,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지적하며 반시장적 행위에 대해 비판했다. 중국의 반시장적 행위로 인해 미국 등 외국 기업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리 총리는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거나 안보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양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화통신도 미국이 국가 안보를 강조한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에 대해 중국 판매를 제한하는 행동을 비판했다.
결국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옐런 장관은 "이번 방문은 (양국 간) 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현재 양국 간 공식적인 소통 채널이 과거 부시·오바마 정부에 미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제 시선은 남은 고위급 대화로 향한다. 옐런 장관에 이어 존 케리 미국 백악관 기후특사의 방중이 예고된 상태다. 양국은 갈등 고조 상황에서도 기후 위기에 협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또 오는 9월 있을 20개국(G20) 정상회의와 11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미·중 대화 국면에 한·중 관계 향방은?
한편 미·중 고위급 대화가 재개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대중국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미·중 양국이 대화의 물꼬를 트자 일본도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놓고 중국과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서도 최근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 대규모 민간 경제계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아 리창 총리와 만나고 양국 간 경제 무역 교류를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양국 고위 당국자가 잇달아 접촉한 것도 미·중, 중·일 관계와 보조를 맞춘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미국·일본이 모두 중국과 관계 안정화에 나서는데 우리만 '탈중국'을 이야기하다가는 동아시아 왕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지정학적 풍향계를 보고 한국도 태세 전환이 필요한 타이밍"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조만간 한·중 외교장관 회담까지 성사된다면 중국과 좀 더 협력하는 모드로 진전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