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범에게 계좌 개설 정보 알려줬다가 공범 취급...헌재 "기소유예 취소"

2023-07-09 10:24
투자사기 당했는데 되려 피의자 신세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보이스피싱에 속아 계좌 개설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넘긴 피의자에게 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9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청구인 A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A씨는 2021년 4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보고 보이스피싱 조직에 투자금 1100만원을 입금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에게 수익금 출금을 위해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A씨는 피싱범이 시키는 대로 신분증과 신용카드 번호, 휴대전화 인증번호 등을 보냈다.
 
그러나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고 A씨가 넘긴 정보로 개설한 계좌는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됐다.
 
이에 검찰은 A씨가 돈을 대가로 통장을 건넨 것으로 보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021년 7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는 돈을 출금하기 위해 인증번호 등을 보낸 것이지 계좌 개설을 위해 보낸 것은 아니라며 맞섰고,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형식상 불기소처분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소원을 통해 불복할 수 있다. 
 
헌재는 A씨가 계좌를 이용해 범죄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다고 판단해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자는 접근매체 대여에 경제적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청구인이 접근매체 전달을 요구받은 시기는 수익금이 발생했다고 고지받은 이후로 접근매체 전달과 수익금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접근매체 전달에 대응하는 관계에 있는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