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사회적 준재난'이라는데...피해자들 "허그, 아직도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

2023-06-04 18:00

서울시 전월세종합지원센터 [사진=박새롬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구제 과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약 2년 전 발생한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 임모씨의 사례처럼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피해 입증 서류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이 축소되거나 심각할 경우 제대로 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인 '준재난'으로 인정된 만큼 허그가 보다 과감한 선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4일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 임모씨는 "사기사건으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경험을 했는데 허그로부터 피해사실 확인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또 한번 좌절의 경험을 했다"면서 "(허그가) 법원 판결문을 증빙했는데도 피해금액을 확정할 증빙서류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과연 피해자들이 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어떤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허그는 피해 확인서가 대출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빠른 (후속)절차를 위해서 3000만원(가계약금)을 뺀 확인서만 먼저 받는 게 낫다고 설명했지만, 이 확인서에는 명확하게 피해 금액이 적혀있기 때문에 추후에 금융기관에서 대출할 때 (피해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를 일"이라면서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해금액을 축소하라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피해사실 확인서는 피해자가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통해 신청하면 허그 심사를 거쳐 발급된다. 피해사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임대차 계약 종료 후 1개월이 지났거나 △경·공매 낙찰로 임차권이 소멸되는 경우 △비정상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이 계약해제를 요구했으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등이다. 피해자가 전세사기를 당했더라도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았거나 경·공매에서 낙찰되지 않는다면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물론 전세사기의 경우 건축주와 집주인, 중개인이 한통속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크로스 체크(교차 검증)해야 한다는 허그 측의 주장도 이해는 간다. 허그 관계자는 이번 사례에 대해 "원래 주채무자(임대인)에게 돈이 들어간 사실을 확인해야 피해금액을 확정할 수 있는데, (임씨의 경우) 내부 확인 결과 피해자가 전체 보증금을 입금한 내역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며 "피해 금액 인정은 해석의 영역이라 시간이 걸릴 수 있어, 피해금액 3000만원을 인정받지 못해도 은행 저리대출 등 지원받는 내용에는 차이가 전혀 없으니 1억8500만원만 우선 지원을 받으라고 권유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번 사례 외에도 허그의 피해자 지원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는 점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경우에도 지급 이행 시기가 되면 허그가 각종 약관 위배 등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에서도 피해자 대부분은 "보증보험에 가입해도 허그에서 보증보험 이행 시기가 오면 절차, 규정 해석을 이유로 보증 이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해 수도권 전세사기 피해자 A씨의 경우 이사 하루 뒤 전입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보증금 지급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당시 허그는 약관상 이사 당일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에만 보증효력이 발생한다며 약관을 위반해 보증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A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허그는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보증금 지급을 약속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장은 "피해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도 조건부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허그의 문턱을 넘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충을 겪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센터에 따르면 2억3000만원 신혼집 전세보증금 반환사고를 당한 피해자 B씨는 은행 대출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전세사기 피해 확인서가 필요했지만, 경매가 유예되며 피해 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해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이행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받으려면 주채무자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보증금반환보증이행 예고가 선행돼야 하는데, 전세사기 연루 집주인들은 거주지를 변경하거나 잠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송 서류를 법원 등에 일정 기간 게시하는 공시송달 관련 서류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다만 허그 관계자는 "보증보험 발급이 연간 5만건 정도인데 면책 사례는 손에 꼽는다"며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 계약자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사항을 지키지 못했을 때 이행이 지연되거나, 절차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의 의무사항을 지킨다면 면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임차인들이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할 때, 타인 계좌나 공인중개사 계좌로 입금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반드시 계약서상 명시돼있는 임대인의 계좌로 입금해야 하며, 그 증빙자료를 꼭 갖고 있는 것이 향후 분쟁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