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에…은행 '10억원 초과' 고액예금 800조 육박

2023-05-15 14:51

국내 한 은행 영업점에서 금융소비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은행 한 계좌에 10억원 넘는 고액 예금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약 8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이 불안정하고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안전한 은행권으로 자금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에 예치된 저축성예금 중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계좌의 예금은 총 796조348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6개월 전보다 1.1%(8조4330억원), 1년 전보다 3.5%(26조6260억원) 증가한 규모다.

이 중 정기예금이 564조546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업 자유예금(234조7850억원)과 저축예금(24조4480억원)은 같은 기간 각각 6.3%, 52.9% 감소했다. 기업 자유예금은 기업이 일시적으로 남는 자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상품이고 저축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결제성 예금이다.

정기예금이 늘고 기업 자유예금과 저축예금이 줄었다는 것은 지난해 금융소비자들이 입출금이 자유롭고 이율이 낮은 상품보다는 예치 기간을 정해 놓고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을 더 선호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예금 계좌 수도 2021년 말 8만9000개, 지난해 6월 9만4000개, 지난해 말 9만5000개 등 증가세를 이어갔다.

금융권에서는 고액 정기예금 규모가 급증한 것을 두고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한번에 0.50%포인트 인상하는 이른바 ‘빅스텝’을 단행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고금리 기조로 인해 예금금리가 상승하자 개인 고액 자산가와 기업들이 은행 예금에 여윳돈을 넣었다는 해석이다.

다만 고액 예금 규모 확대에도 그 상승 폭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10억원 초과 예금 총액의 전년 말 대비 증가율은 2021년 말 13.8%에서 지난해 말 3.5%로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 경색 등으로 인해 대출금리가 치솟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예금 중 일부를 대출 상환에 활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통상 10억원 초과 고객 예금 중 80~90%가량을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고액 예금 중 일부를 빼면서 증가율이 둔화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예금은행 신규 취급액 기준 기업 대출금리는 지난해 1분기 3.35%, 2분기 3.63%, 3분기 4.41%, 4분기 5.50% 등 가파르게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들어 기업에 흘러가는 자금이 어느 정도 풀린 데다 대출금리도 내려가고 있어 기업 고액 예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경기 둔화로 투자 불확실성이 커 기업들이 은행에 여유 자금을 예치해 놓고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3%였지만 설비투자는 반도체 장비 등 기계류 감소 영향으로 4% 역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