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尹정부 1년 ② 국민 눈높이와 정서에 맞춘 소통 절실

2023-05-16 18:33
ㆍ감성적 공감 없는 논리적 주장은 설득에 한계
ㆍ연일 외치는 '자유' , 구체성 없는 추상적 주장

 
 

국기에 경례하는 윤석열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5%, 부정 평가는 59%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이후 1년 동안 분기별 국정 지지율을 보면 윤 대통령은 29~54%다. 취임 직후 한때 54%로 반짝했을 뿐 줄곧 20%대 후반~3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68~81%, 박근혜 전 대통령 42~60%에 비하면 한참 낮은 편이다. 취임 직후 52%를 기록했다가 이후 21~32%에 머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그렇게 국정 지지도가 낮을까? 이번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부정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외교였다. 32%나 됐다. 그러나 외교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도 35%나 됐다. 최근 한·일, 한·미 외교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은 ‘호갱 외교’, 국민의힘은 ‘국익 외교’라고 서로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외교가 긍정이나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은 이런 일시적인 상황 탓으로 보인다. 일시적으로  쟁점이 된 외교를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를 분석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낮은 국정 지지도···'독단적·소통 미흡'이 큰 요인


그렇다면 무엇이 주요 요인일까? 이번 조사에 따르면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이 각각 6%로 합치면 12%가 된다. ‘경제/민생/물가’ 12%와 함께 가장 높다. 윤 대통령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요인은  일시적 현상인 ‘외교’를 빼고는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 그리고 ‘경제/물가/민생’인 셈이다.

 

‘경제/물가/민생은’ 어느 정부에서나 긍정 또는 부정 평가 요인으로 존재한다. 반면에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은 대통령에 따라 다르다.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요인으로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이 최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번 조사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 조사에서도 이 항목이 부정 평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단적·일방적’이나 ‘소통 미흡’은 국민에게는 거의 같은 개념으로 다가올 것이다. 야당 등 반대 세력과 협의하거나 국민 정서에 공감하거나 국민을 설득하거나 하는 게 부족하다는 뜻으로 여겨질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통합과 협치를 위한 공감과 설득의 부족이다.

 

통합과 협치의 최우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나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협상과 타협을 한다면 그게 바로 통합과 협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국민 눈에는 ‘독단적·일방적’에 ‘소통 미흡’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을 윤 대통령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처지가 큰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년간 대장동 사건 등 여러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 왔다. 법적으로 말하면 형사 피의자 신분이다. 이 대표는 몇 차례나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공개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응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리 제1야당 대표라고 하더라도 형사 피의자 신분인 이 대표를  만나는 게 껄끄러울 수 있다. 이 대표로부터 국정 협조를 받는 대신 그의 검찰 수사를 적당한 선에서 끝내기로 타협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타협까지는 아니더라도 검찰에 ‘알아서 적당히 수사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재명 '형사 피의자 신분'이 협치 걸림돌이지만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과 국정을 논의하고 협조를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불법과 타협하고 수사의 공정을 해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제1야당 대표가 형사 피의자 신분이라는 사실은 민주당에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도 부담이자 협치와 통합의 걸림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는 것이 먼저”라며 거절했다. 이 일은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의 통합과 협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표가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걸림돌이라고 해서 윤 대통령의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1야당 대표와 만나 국정을 논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그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기자회견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딱 한 번 기자회견을 했다. 취임 100일을 맞아 작년 8월 17일 한 게 전부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안 했고 지난 10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스태프한테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뭐를 했고 하는 그런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놨다”며 “무슨 성과나 자료를 주고 잘난 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자화자찬이나 하는 자리는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 것,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싶은 것을 알리는 자리다.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국민과 공감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다. 기자들은 대통령이 듣기 거북한 질문도 한다. 국민 중에는 그런 질문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에겐 그런 질문일수록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런 질문에 진솔하게 대답하고 설명하면 대통령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최고의 소통 수단 기자회견도 하지 않아

 

윤 대통령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기자회견을 한다면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이라는 이미지를 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 정서와 공감하면서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과 정서적 공감을 못하거나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낼 것은 물론이다.

 

실제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측면이 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한 말이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논리적으론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 공감을 받기는 어렵다. ‘일본에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국민 마음은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우리 국익에 더 해롭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게 국민 정서를 헤아리며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강조했다. 많은 국민들은 자유의 소중함이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 자유를 강조해야 하는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유가 소중하지만 지금이 자유 수호가 절실한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를 강조하는 시장 경쟁이 강자에게만 유리할 뿐 약자에게는 불평등과 양극화만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추상적 가치만 강조했다. 자유가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아 국민이 실제로 어떤 고통을 당하고 불이익을 입고 있는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했다고 하더라도 부족했다. 그러니 국민이 공감하기 쉽지 않다. 지도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문제가 아무리 절실하고 중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대중이 그것을 그런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과제가 될 수 없다.


중도파·무당층 지지 확보가 최대 과제
 

이번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도 성향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윤 대통령 국정 수행을 긍정 평가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65%가 부정 평가를 했다. 지지 정당 별로 볼 때도 무당층에서 긍정 평가 20%, 부정평가 65%로 부정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 중에는 긍정 평가 58%, 부정 평가 39%로 나왔다. 윤 대통령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서도 부정 평가가 그렇게 높았다. 중도와 무당층에서 불신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보수층에서조차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앞으로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기존 지지자는 더욱 강력한 지지자로 만들고 무당층과 중도파는 지지자로 이끌어 내는 게 그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층은 어차피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를 강화하고 무당층과  중도파를 지지로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게 국민 눈높이와 정서에 맞춰 소통하는 노력이다. 감성적 공감은 없이 논리에만 치우친 주장과 설득, 구체성을 곁들이지 않은 추상적 가치의 제시만으론 국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국민 마음을 움직여야 국정 수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