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양극화] 대기업 지속가능기업 '박차'···중견·중기 경영난에 '벅차'

2023-05-10 05:50
삼성·현대차·SK·LG그룹 올해도 변함없이
탄소중립·재생에너지·수소 전환 적극 투자
규모 작은 기업, 경기 위축에 실적 개선 급급
ESG경영 소홀땐 위기···직원 역량 강화부터

국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기업 규모에 따라 '양극화'하는 분위기다. 삼성,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집단들은 최근 들어 ESG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반면 중견·중소기업들은 빠르게 악화된 경영 환경 등으로 인해 ESG 경영에 신경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중견·중소기업이라고 ESG 경영에 소홀히 하면 큰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작년까지 2~3년간 국내 경영계 화두는 ESG였다. 당장의 이익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할'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너도나도 'ESG위원회'와 같은 관련 조직을 만들었고 환경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열중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신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ESG와 관련해 어느 기업보다 앞장서서 움직였지만 RE100 미가입 등으로 인해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해외 사업장은 거의 대부분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다. 다만 국내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해 RE100 가입을 신중하게 검토해 왔다. 재계 1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만큼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따져본 후 현실성 있는 약속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같이 다소 유보적이었던 삼성전자도 신황경경영전략 발표로 RE100 가입과 탄소중립 등을 경영 목표로 약속했다.

삼성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 그룹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국내에서 ESG 경영을 처음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 SK그룹은 최근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지표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수치적 검증을 통해 기업이 더욱 ESG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포부다.

현대차그룹 역시 '전기·수소 전환' '사업장 재생에너지 전환' 등 ESG 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LG그룹도 이전부터 그룹 차원ㅇ[사 'ESG 보고서'를 출간해 계열사 ESG 활동과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 같은 대기업 그룹 분위기는 올해도 큰 변함이 없다. 반면 중견·중소기업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까지는 ESG가 경영 판단에서 큰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올해는 성장과 수익을 중시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회귀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경기가 심각하게 위축되자 당장의 실적 악화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대기업 ESG 기준에 맞춰 납품해야 하는 중견·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ESG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용과 인력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운데 대기업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페널티(벌칙)를 받는 납품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초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 ESG 관리 현황'을 조사한 결과 협력사에 ESG 평가 기준을 적용한 곳은 26곳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시가총액·매출액 상위 주요 대기업 30곳과 협력사 108곳을 대상으로 했으며 공기업 3곳도 포함됐다. ESG 평가기관 후즈굿(지속가능발전소)이 주요 기업 지속가능보고서와 설문을 토대로 분석했다.

ESG 평가 기준을 확대하는 대기업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ESG 평가 기준을 운영하는 곳은 △2019년 17곳 △2020년 20곳 △2021년 26곳으로 늘었다. ESG 평가 항목 수도 30개 문항부터 많게는 120개 이상으로 환경·안전·인권·보건·윤리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있었다. 탄소중립 관련 협력사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하는 곳은 14개(46.7%)였다.

평가 방식은 인센티브(유인책)보다는 페널티를 주는 방식이 많았다. ESG 평가 기준을 가진 70%가 구매정책에 이를 반영하고 있었으나 인센티브는 13곳, 페널티는 16곳으로 나타났다. 협력사에 대해 자발적 ESG 경영을 독려하는 회사는 3곳에 불과했다. 반면 페널티만 부여하는 기업은 5곳이었다. 페널티는 물량을 줄이거나 벌점을 부가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중소 협력사 ESG 역략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중소기업 중 ESG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는 10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3%가 '수준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정작 거래 대기업에서는 ESG 관련 지원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42.6%를 차지했다.

대기업이 ESG 경영을 지원하는 방향도 협력사들과 다소 맞지 않았다. 주로 지원하고 있는 항목으로는 교육(39.8%)과 컨설팅(25%)이었고, 정작 가장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시설·설비·자금 지원은 4.6%에 불과했다. 대기업 지원 사항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회사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44.4%)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됨(27.8%) △상환 조건 등 지원 요건 부담(16.7%) 등을 꼽았다.

일부 우수 사례로 손꼽히는 대기업도 있었다. 현대제철은 에너지 사용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하고 구축 시스템을 무상으로 지원해 2014년부터 41개 협력사에 18억원 규모 에너지 절감 설비·시스템을 구축했다. 협력사가 아낀 전력비용은 연간 5억3000만원에 달한다. 삼성전기도 협력사 에너지 절감과 효율 향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우수 사례로 평가됐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ESG 평가 요구가 늘어나고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평가 대응에 인력·비용 부담이 커서 이에 대한 단가 인상 등 비용 보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 ESG 평가 담당자들도 협력기업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영세한 협력사들도 많아 관리 대상 범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지 고민된다"며 "대부분 협력사가 아직 ESG 경영에 필요한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고 있고 인력·설비가 부족해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견·중소기업이 ESG 경영에 소홀하면 향후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중견·중소기업들도 ESG 경영에 대해 '수익성을 저해한다'는 인식을 가지기보다는 이를 경쟁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물론 리스크 관리를 위해 기업이 초기에 투입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부담될 수 있지만 적절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비용 이상으로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원과 에너지원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줄인다거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또 소비자 대부분이 ESG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 제고에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ESG 경영을 단순히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이사에 대한 형법상 처벌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통해 기업에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상황에서 ESG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ESG 경영에 대해 기업 구성원 역량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우선 ESG가 기업 모든 활동에 연계돼 있음을 인지하고 작은 것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저만치 앞서가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인 지원이 아니라 공급망 관리 생태계 구축과 시스템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