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민주당의 위기...어른은 어디에 있나?
2023-04-27 16:39
돈 봉투 전당대회와 민형배 의원 복당은 여러모로 닮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않고 또 책임지지 않는 ‘내로남불 DNA’가 밑바닥에 흐른다. 돈 봉투 사건에 등장하는 송영길 전 대표와 윤관석, 이성만 의원, 그리고 민 의원 복당과 관련한 박홍근 원내대표와 민형배 의원은 모두 586 정치인이다.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상대를 감아 치는 데 능하다. 나만 옳다는, 우리는 무오류라는 정신승리를 바탕으로 정치 혐오감을 키우는 주범들이다. 자기 육성이 담겼고, 또 복당 사유가 위장 탈당이었다는 걸 자인하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돈 봉투 전당대회 정황을 가늠하게 하는 녹취록에는 윤, 이 의원 육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전 대표 당선을 위해 동료 의원들에게 돈을 뿌리자고 공모한다. 이어 어떻게 돈을 마련하고 누구에게 전달하고 어떤 방법으로 전할지를 주고받는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자신들끼리 흔연스럽게 형, 오빠라고 부르며 돈 봉투 살포를 공모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도 윤 의원은 정치 수사, 야당 탄압이라며 발뺌했다. 자신이 돈 봉투 전당대회를 공모했음이 분명한데도 어떻게 낯 뜨거운 항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송 전 대표 언행 또한 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송 전 대표는 돈 봉투 사건이 불거지자 정치검찰에 의한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또 이재명 대표의 조기 귀국 요청에는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히겠다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돈 봉투 전당대회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더러 보고받지도 않았다”고 잡아뗐다. 녹취록에서 강래구 감사는 “영길이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처리를 했더라”라고 말했다. 또 자신이 전달한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영길이 형이 잘했다”고 칭찬했다는 말도 나온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영길이 형과 송 전 대표는 서로 다른 유령 인물이라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파리 기자회견에서는 책임지고 탈당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4일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 많다. 상황을 파악하겠다”면서 “논란을 해결한 뒤 복당하겠다”고 했다. 우선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꼼수가 아닐 수 없다. 또 탈당한 뒤 김의겸 민주당 의원에게 ‘언론 창구’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 김 의원은 “26일 송 전 대표로부터 ‘언론 문의가 많이 오는데 직접 나서기 어려우니 언론 창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탈당계를 제출하고, 뒤로는 민주당 의원에게 언론창구를 맡아달라고 한 것이다. 형식적 탈당이자 정치적 쇼임을 자인한 셈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정치적으로 돌파하는 586식 정치 전술이다.
민형배 의원의 복당 의결 과정 또한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6일 지난해 ‘꼼수 탈당’한 민 의원 복당을 전격 처리했다. 그동안 민 의원과 민주당은 위장 탈당이 아니라 소신에 기반한 탈당이라고 우겼다. 당장 당내에선 우려와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다. 총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돈 봉투 전당대회’에 이은 ‘위장 탈당’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을 비롯 정의당과 시민단체는 “꼼수를 자인한 꼴”이라며 민주당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반박하기 어렵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는 민 의원 탈당에 의한 ‘검수완박’ 법 처리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민 의원 복당 결정은 헌재 판결마저 무시한 반민주적 처사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내세운 복당 명분 또한 궁색하며 스스로를 부정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민 의원의 탈당은 대의적 결단으로 입법에 동참했다”며 자신들과 공모한 위장 탈당이었음을 고백했다. 줄곧 위장 탈당이 아닌 소신 탈당이라고 강변해온 것을 뒤집은 발언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제는 국민과 당원께 양해를 구하고 민 의원을 복당시키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고 판단했다”는 말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이 모든 중심에 586정치인들이 있다. 이들은 386부터 시작해 486, 586으로 진화하는 동안 정치 기득권으로 자리 잡았다. 부끄러움과 반성을 모른다.
‘비명’(비이재명)계 5선 중진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반성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며 날을 세웠다. 이 의원은 “헌재로부터 중대한 흠이 있다고 지적받은 꼼수 탈당 장본인을 복당시키는 건 민주주의와 국회법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또한 “민주당은 상식과 양심마저 내팽개쳤다. 국민을 속이고 헌법재판소를 속인 위장 탈당 쇼의 결말”이라고 조롱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송 전 대표 복당도 멀지 않았다. 정의당은 “위장 탈당을 고백하는 꼴”이라며 비판 여론에 가세했다. 민 의원 지역구가 있는 광주 ‘광산시민연대’도 “민주당과 민 의원 행동은 ‘표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돈 봉투 전당대회와 민 의원 위장 탈당은 구태한 비민주적 행태다.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제출한 녹취록에는 돈을 뿌리자고 공모한 정황과 전달 방법까지 생생하다. 이들은 자신들 표현대로 밥값에 불과한 돈으로 동료 의원을 매수했다. 그런데도 아Q식 정신승리에 취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기업이라면 이 경우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았던 엔론이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건 좋은 예다. 세계적 기업들은 부패와 싸움을 통해 성장했다. 돈 봉투 전당대회는 민주당이 여전히 산업화 시대 부패관행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한다. 위장 탈당 또한 후진적 정치행태다.
위기 상황에서 어른의 책임과 역할이 요구된다. 민주당 지도부가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자정능력을 상실한 만큼 당내 어른이 나서야 한다. 원로라면 자신에게 돌아올 유불리를 떠나 죽비를 들어야 한다. 당이 어려울 때 두 차례 비대위원장을 맡아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는 평소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에 올렸다. 정 전 의장마저 강성 지지층의 공격이 두려워 관망한다면 당은 구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민주당과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586 정치인들에게 누군가는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