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칼럼] 전세사기 피해 확산…기업형 임대사업자 육성하자

2023-04-24 14:12

[김효선 위원]



“여기 전세 냈어요?” 특정한 장소에서 다툼이 생길 때 흔히 나오는 말이며,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표현법이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전세의 위상마저도 느껴진다.
전세제도는 임차인에게는 주거의 안정감과 비용 절감을, 임대인에게는 목돈을 종잣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선호도가 높은 임대차 방식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전세제도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로 인해 삶이 지옥 같다고 토로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7월부터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추진해온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피해자 대부분은 청년층이다. 전체 중 51.5%(878명)가 청년·신혼부부인 2030세대며, 2억원 미만(58%) 피해를 본 다세대주택(66.2%, 1129곳) 거주자가 가장 많았다. 이처럼 전세사기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고 주거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청년 또는 신혼부부의 전 재산을 모두 날리게 했다는 점에서 악질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피해 유형은 다음과 같이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
전셋값 하락으로 인한 역전세난 또는 반환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계약 후 이사갈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경우
 
2. 무자본·갭투자
자본금 없이 미분양 빌라 등을 여러 채 매입한 후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집값을 충당했다가 최근 하락한 전셋값으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경우
 
3. 부동산 권리관계 및 주요 정보 허위 고지
전세 대상 주택에 저당권 설정, 압류, 경매 진행 등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체결하거나 주택보증·보증보험 등 보증을 받을 수 없는 건축물임에도 이를 속이고 임대차 계약 체결
 
4. 실소유자가 아닌 사람과 무권한 계약 또는 위임 범위 초과 계약
해당 주택에 정당한 권한이 없음에도 서류 위조로 합법적인 대리권자인 것처럼 임차인을 속이고 소유자가 알지 못하는 계약을 하거나 단순 관리 권한, 월세 계약만 위임받고 임차인과 전세계약 체결 후 보증금 갈취
 
5. 공인중개사 불법 가담 등 불법 중개
중개 대상물에 거짓된 정보를 제공해서 임차인의 판단을 어렵게 하거나 무자격·무등록 중개행위를 한 경우
 
전세사기는 최근에 시작된 일이 아닌 만큼 범죄 유형도 다양하다. 정부에서는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판단하고 여러 가지 대책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임차주택 낙찰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낙찰 여력이 부족할 때는 피해자 주거 안정을 위한 장기 저리 금융 지원 등이다. 이런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꾸준하게 실행되어야 할 것은 양질의 임대주택을 적정 수준까지 공급하는 것이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1~2인 가구뿐만 아니라 중대형 면적 등 다양한 주택 수요를 반영한 공급이 이루어져 선진국 대비 낮은 공공 임대주택 비율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존 임대주택에 일정 부분 개보수를 지원하여 양질의 임대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관리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공공 임대주택 공급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 부문의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주요 임대주택 공급자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민간 주택 임대 사업이 활성화한 일본 등 사례를 보면 대기업 형태의 임대사업자가 정부 지원 속에 임대주택 건설과 관리 등에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영세한 임대사업자가 소규모로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것보다 대규모로 임대하게 되면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단위주택당 임대·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고 전세사기를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임차시장에서 주택 수요와 공급에 따른 영향을 감안했을 때 청년층 주거비 경감과 안정적인 임차계약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 등 임차인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고민도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 시장은 완전한 실수요 시장으로 전세사기 등 불안정한 요소는 많은 임차인들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고, 주거에 대한 불안은 삶의 질마저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방지책과 함께 거시적인 안목으로 시의적절한 공급을 통해 마음껏 전세를 사는 세상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효선 필자 주요 이력 

△NH농협은행 WM사업부 NH All100자문센터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