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가스·전기요금 인상 놓고 또 '까막눈'..."인상 시기 결정 못해"

2023-04-20 16:00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과 정부가 한 달째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놓고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전기·가스요금 결정이 3주 가까이 늦어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내년 총선 등을 의식해 눈치 보기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에너지업계를 중심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부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상을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당은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과 정부, 경제·에너지 업계는 20일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인상 시기'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에 책임을 돌리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당·정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경제산업계나, 인상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에너지산업계나 인상이 불가피하단 인식을 같이했다”면서도 인상 시점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당정이 전기·가스요금 인상과 관련해 마주앉은 건 지난달 말 당정협의회를 시작으로 이번이 네 번째다. 당초 3월 말 인상이 예상됐지만 당정은 결정을 보류했다. 내부적으로 ‘동결’ 입장을 정한 여당 지도부는 정부를 설득하는 동시에 요금 인상 대신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박대출 “두 공사,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자구책 마련해야”

박 의장은 이날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전기·가스 요금을 인상하는 경우 수출 부진과, 물가,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산업계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게 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또 “한전만 해도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하고, 한전공대에 수 천억을 투입하고, 내부 비리를 적발한 자체 감사 결과를 은폐하고 온갖 방만경영과 부패로 적자만 키워놓고 어떠한 반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런 도덕적 해이의 늪에 빠진 채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요금을 올려 달라고 하기 전에 한전과 가스공사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더해 달라고 수 차례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응답이 없어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도 “한전과 가스공사의 비양심적인 방만 경영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이 스스로 뼈를 깎는 고강도의 긴축 경영도 없이 요금만 인상하겠다는 건 결국 그 손해를 국민에게 전가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주장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일각에서 전기요금 인상 시점이 윤석열 대통령 방미(24~29일) 이후로 미뤄진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시점을 얘기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요금 인상을 미루면 여름에 전기료 폭탄으로 당이 유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여름철 냉방비를 더 많이 사용하는 시점에 요금을 올리면 더 부담이 크지 않냐는 건 심리적 요인”이라고 일축했다.
 
내년 총선 의식한 정치권, 요금 인상에 '침묵'

정치권에선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이 요금 인상 결정을 미루는 주원인이란 분석이다. 여권에서는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세라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격 인상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은 지난 1월 난방비 폭탄 사태 때도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이를 의식한 듯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경제산업계와 에너지산업계의 의견이 갈렸다.

경제산업계는 경영부담 가중을 이유로 요금 인상을 재고해 달라는 요청이 대다수였다고 전해진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토요일 심야요금제’를 조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기업에 적용하는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요금제가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며 도입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반도체 업계가 너무 어려운상황임을 고려해달라”며 “특히 24시간 전력공급이 필수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인프라 구축도 차질이 없어야 한다”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박 정책위의장은 전했다.

반면 전기공사협회, 전기산업진흥회, 민간발전협회 등은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도시가스협회는 가정용 요금의 미수금 문제와 관련해 “현재 요금을 4배 인상해도 미수금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인상을 주장했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옥상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없다. 업계도 자구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에 “업계에서도 나름대로 전력 전기 사용을 줄이려 효율적 기기를 쓰거나 다양한 투자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효수 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도 “(2050년까지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을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선언했고 조금씩 사용량 늘리는 중이다”라며 “앞으로 적극 더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당사자인 한전과 가스공사 측은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정책위의장은 불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긴박한 상황에 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한전과 가스공사도 그에 상응하는 구조조정 노력을 해야하는 부분을 이해해야 (국민들도) 요금인상 문제를 수용할 수 있지 않겠나”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