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디지털금융중심지? 또 다시 구호만 외칠 것인가
2023-03-10 09:01
지난 1월 31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업무보고에서 디지털 금융 중심지 구축안이 건의되었다. 아울러 금융위는 글로벌 금융사 국내 유치 계획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보도다. 업무보고 자리에 동석한 금융연구원은 실물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작은 싱가포르에 더 많은 글로벌 금융사 헤드쿼터가 모이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과 제도를 정립해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신분 제재와 형사처벌이 많아 외국계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데다 자유로운 고용과 해고가 어려운 경직적인 노동시장도 개선이 필요하며 언어·교육·의료 등 글로벌 금융사 임직원이 누려야 할 정주 여건도 영어가 통용되고 고급 교육 시설과 영리 의료가 제공되는 싱가포르에 비해 떨어지므로 두바이처럼 특정 지역을 금융특구로 지정하는 방안과 우리가 강점이 있는 디지털 금융 중심지 모델을 검토해 보는 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다고 한다. 금융위는 2008년 제정된 금융중심지법에 따라 3년마다 기본 계획을 수립·시행하는데 현재 제6차 금융 중심지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지 디지털 금융 중심지 구축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금융당국에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시장은 결국 런던과 월스트리트다. 금융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직접금융시장이 더 발전해야 한다”며 은행이 아닌 자본시장 중심의 성장 전략을 주문했다는 보도다. 지난 2월 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외환시장구조 개선 방안'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시장을 보다 더 외국인들에게 개방해서 외국인 투자의 문을 더 활짝 열어 자본시장을 육성하자는 취지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쿠팡이나 중국의 알리바바 등 수많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 뉴욕 증시로 달려가는 가장 큰 이유가 뉴욕 증시는 복수의결권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경영권을 방어하기 수월하다는 점인데도 한국에서는 한사코 이런 핵심적인 제도 도입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에 한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번에 대통령업무보고에서 거론된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의 금융혁신은 파격적이다. 두바이국제금융센터는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MEASA)의 금융 중심지를 목표로 2004년에 ‘자유구역(free zone)’으로 문을 열었다. 두바이 중심 110㏊(약 33만3000평, 여의도 면적의 약 3분의 1)인 두바이국제금융센터에 대해 배타적 독립성을 지닌 두바이금융당국(Dubai Financial Service Authority·DFSA)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이다. 두바이금융당국은 두바이나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의 법률·제도와는 독립된 사법제도인 두바이법원(Dubai Courts)을 가지고 관습법(common low)을 따르고 영어로 운영된다. 이것만으로도 회교국가이고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는 두바이가 국제금융센터를 육성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두바이금융당국에서 핀테크회사 인가를 받으면 전 세계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외국인도 내국의 지분 없이 100% 지분을 보유할 수 있고 50년간 법인소득과 이익에 대해 면세가 적용된다. 핀테크이노베이션허브(Fintech Innovation Hub), 핀테크하이브(Fintech Hive)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핀테크이노베이션허브에는 두바이금융당국에서 핀테크 인가를 받은 전 세계 누구나 월 80만원 정도면 4명이 일할 수 있는 공동작업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후 기업 규모가 커지면 핀테크하이브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는 4031개 기업에서 2만9700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회사 약 2000개에는 약 2만2000명이 활동하며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금융회사, 핀테크회사, 암호화폐회사,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속속 입주하면서 오늘날 명실공히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의 국제 금융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규제가 많은 국가들의 관련 회사들이 속속 진입하며 날로 발전하며 오일머니 중동의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도 4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스위스 추크, 싱가포르, 두바이만 둘러보아도 한국이 과연 디지털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규제가 너무 많고 법인세율이 높고 강성 노조의 횡포가 심한데 이를 두고 금융특구나 디지털 금융 중심지로 지정한다고 해서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2008년 동북아 금융 중심지를 건설한다고 여의도에 국제금융센터 빌딩을 짓고 유수 대학에 금융전문대학원을 설치하고 그 후에 부산에 국제금융센터 블록체인특구도 지정했지만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만 이유가 너무 많은 규제, 높은 법인세율, 강성 노조의 횡포가 그대로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고기술 첨단 제조업 아니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구조 전환이 안 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핵심이 금융이다. 비장한 각오로 선진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비전을 정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첫째, 획기적인 규제 개혁과 디지털 금융특구 육성으로 홍콩 사태로 탈홍콩하는 국제 금융회사들도 유치하고, 동아시아 암호화폐 회사들도 유치해서 싱가포르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국가로 탈바꿈해야 한다. 둘째, 왜곡된 금융 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관치금융·정치금융을 청산하고 금융산업 생태계 정상화로 금융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관치금융·정치금융 청산을 위해 정부 조직을 개편해 금융감독 체계를 정상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셋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플랫폼 혁명 시대에 금융도 빅테크(네이버·카카오·토스 등)와 금융의 융합 시대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추세에 부응해 한국의 중층적인 금융 규제 혁파로 새로운 금융산업을 육성하면서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넷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가상자산, 디지털자산 시대에 부응해 디지털자산사업 발전과 투자자 보호 간에 균형을 도모하는 정책 추진도 추진해야 한다. 이미 금년 초 상용화하기 시작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시대에 부응해 동아시아 지역통화가 디지털 위안화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금융산업 선진화 없이는 한국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