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 시대] 의대 열풍에도 '전공의 부족'···필수의료 현주소는

2023-03-07 19:00
병리과·외과·산부인과도 기피 늘어
5년간 소아과 동네 병·의원 662곳 문 닫아

[사진=경북대병원 응급실]


‘필수의료’마저 위기다. 최근 소아청소년과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일할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진료를 중단하거나 문을 닫는 병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몇 년째 바닥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대학병원의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결과, 소아청소년과가 있는 병원 50곳 중 38곳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2023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 자료를 보면 소아청소년과 모집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정원을 다 채운 곳은 서울대병원이 유일했다. 모집정원 확보율이 50%를 넘긴 병원은 순천향대서울병원, 아주대병원, 울산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4곳에 불과했다.

이 중 76%에 해당하는 38개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0명이었다. 이 외 산부인과 16곳, 외과 17곳, 병리과 21곳의 전공의 지원자도 없었다.

소아과 진료를 보는 대학병원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전국 주요 국립대병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립대병원 15곳의 소아청소년과 평균 진료 대기일 수는 2017년 9.7일에서 지난해 16.5일로 5년 새 약 70%나 늘어났다.

의료계에선 소아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재정 지원을 통한 수가 인상이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료진에게 충분한 보상을 통해 전공의 유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소아과 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만7611원이다. 전체 15개 진료과 중 가장 낮다. 아울러 지난 5년간 동네 병의원 662곳이 폐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계가 진료비를 올려서라도 1차 의료기관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우리나라 소아과 진료비는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해외에서 정부가 소아과에 지원하는 보상 체계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점차적으로 최대 15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가 부족해 응급실을 축소 운영 중인 강원 속초의료원은 ‘연봉 4억원’이라는 파격 조건과 응시 자격을 넓혀 채용에 나섰지만 여전히 필수 인력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1차 채용에서 3억2400만원의 연봉을 제시했으나 응시자가 한 명도 없었고, 2차 채용에서 겨우 1명을 충원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의대 열풍’이 더욱 거세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SKY’ 정시 합격자 가운데 30%가량이 등록을 포기하고 의약학 계열로 빠지고 있어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김진수씨(30)는 “소아과의 경우 수가가 낮은데다 환자 수는 줄고 있어 갈수록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그만큼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라며 “의대 졸업을 앞둔 후배들은 미용 쪽 분야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대에 진학하려는 것은 이공계 대비 보상이 좋다고 생각해서로 보인다. 결국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획기적인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그간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답보 상태였던 의대 증원과 관련해 올해 본격적으로 정부가 공론화를 시작하면서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이다.  

복지부는 올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매년 동일하다.

실제 의대 정원이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공급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면 2035년에는 의사 수가 수요 대비 2만7000명 넘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7명) 대비 56.8%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