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IPEF 협상, 조기수확 패키지 도출 가능성에 대비해야
2023-03-03 09:16
작년 5월 공식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이 올해는 빠른 전개를 보일 전망이다. IPEF 출범을 주도한 미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의 지위를 십분 이용해 IPEF 성과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점 말고도 2024년 대선에서 재임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IPEF의 성과 도출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민의 대중국 호감도가 역사상 가장 낮은 상황에서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박탈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도 대중 강경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고, IPEF 성과는 바이든 대통령의 유효한 홍보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오는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IPEF 성과 도출을 위해 협상 참여국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압박과 설득을 병행할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다만 IPEF 의제의 복잡성과 아직도 구체화되지 않은 논의 방향 등을 감안할 때 11월까지 IPEF의 모든 분야에서 합의 도출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미국의 관심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조기수확(early harvest) 패키지가 도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미국도 속으로는 조기 수확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분야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에 따른 선진국으로서 미국의 책임과 의무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역은 다르다. 협상을 주관하는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협상 초기부터 다양한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통한 실질적인 시장접근을 강조해 왔으며, 합의 내용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합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인도가 일찌감치 무역 분야 협상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역 안에서 핵심은 디지털과 노동, 농업, 경쟁과 투명성 등이다. 디지털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 향후 우리는 물론 세계 경제성장의 핵심 엔진이자 인프라가 될 디지털 기술과 무역의 국제표준이 논의되는 만큼 우리의 디지털 현실 여건과 조화될 수 있는 결과 도출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농산물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용어는 ‘과학과 위험평가에 기반한 동식물 검역’과 ‘규제 절차의 투명성 증진’, ‘절차 개선과 협력 증진’ 등이다. 겉보기엔 매우 합리적인 표현으로 쉽게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과학’이란 이름으로 수출국의 입맛에 맞는 기준을 신중한 고려 없이 수용하는 것이다. 병해충이나 질병은 한번 유입되면 천문학적인 피해는 물론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매우 낮은 가능성이라도 그 이면에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또한 규제 절차의 투명성 증진은 통관과정에 적용되는 모든 제도나 규범의 영문화 및 디지털화를 통해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고,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 질의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질의에 대한 충분한 답변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용어와 표현이 아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정확히 찾아내고 숨겨진 의도를 인식하면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노동은 미국이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로 우리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고된 노동을 요하는 중소기업과 비닐하우스 원예농업, 원양어업과 근해, 염업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현황을 감안할 때 상당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향후 협상은 합의문안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우리의 이해가 걸린 핵심 의제에서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미국에 앞서 우리가 먼저 합의문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협상을 우리 입장이 반영된 문안을 중심으로 끌고 나갈 수 있으며, 협상 타결에 기여하는 모습도 보일 수 있다. 항상 그렇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문안 한 단어 한 단어에 철저한 전문적 검토가 준비되었는지 돌아볼 때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