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지하철 '무임승차 70세'는 위헌이다
2023-02-14 06:00
정년퇴직을 한 달여 앞두고 맞은 생일이 지나 집에서 가까운 농협을 찾았다. 지하철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지하철 탑승 중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 뺐다 하다가 분실하여 5천원 내고 재발급받았다. 지하철 무료승차가 버스 이용과 연계되어 있지 않으니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10여 분 걷기도 한다. 승하차할 때마다 삑삑 두 번 나는 소리에 잠깐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한계비용은 0’을 되새기며 내심 달래고 있다. 간혹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무임승차’로 인해 발생하는 ‘지하철공사 누적적자를 정부가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벽보의 명의자가 지하철공사 경영진이 아니라 노조라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하다.
서울지하철 무료승차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노인 ‘무임승차’로 인해 지하철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는 ‘숫자놀음’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노인을 ‘무임승차족’으로 몰면서 적자 해소 방안읗 놓고 핑퐁게임하는 척하다가 결국 무료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하철 적자를 해소해주어야 한다는 서울시 요구에 추경호 부총리가 “중앙정부도 빚을 내서 나라살림 운영하는데 지자체 지원은 논리구조가 맞지 않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는데 이 맞지 않는 논리구조는 추 부총리의 창작품이다. 중앙정부의 빚은 추 부총리가 부자감세로 세수를 고의로 줄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또한 지하철 적자를 해소할 의지가 있었다면 예산을 편성할 때 우선순위를 높였어야 했다.
2017~2021년 ‘무임승차’로 인한 연평균 적자가 3236억원으로 전체 적자의 절반(49.8%)을 차지한다는 인과관계는 절반도 맞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이 적자는 노인의 무료승차에 따른 비용증가가 아니라 수입감소에 기인하는 것이다. 노인 1명이 지하철을 이용하든 100명이 이용하든 지하철공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불변이다. 지하철 이용의 한계비용은 0이다. 반면에 수입은 1인당 요금과 유료승객 수에 좌우되므로 ‘우대용 교통카드제’가 폐지되면 탄력성의 크기에 따라 증가할 것이다. 유료화되면 지하철 이용 요금만큼 다른 용도에 지출할 소득이 줄어들 것이니 생활수준이 하락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량이 줄어들 것도 우려된다. 무료승차 덕에 김유정문학관에 들렀다가 춘천닭갈비 먹으러 다니던 노인 수가 줄면 지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지금 당장 교통복지 축소의 위협을 받고 있는 노인세대는 베이비 붐 세대(1955년-1963년생)이다. 노인 무료승차가 1982년에 시작되었으니 이 세대는 이 복지가 정착되는 데 평생 기여한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 세대가 혜택을 받을 때가 되니 5년 미루자는 것은 국가의 기망행위이다. 당연히 국가에 대한 신뢰문제가 발생한다. 더욱이 5년 후 70세 노인은 지금의 65세 노인이다. 5년 후 지하철 적자가 다시 누적되면 무료승차 연령을 다시 75세로 올릴 것인가? 지금 무료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것은 문제 발생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베이비 붐 세대는 흔히 부모를 봉양은 했으나 자신은 봉양받지는 못하는 세대로 분류된다. 가족복지에서 소외된 이들을 국가복지에서마저 소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대한민국 노인빈곤율은 46.7%로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면서 압도적인 1위이다. 노인자살률 역시 OECD 평균보다 2.7배(2019년 기준) 높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인 기준연령 인상은 노인 관련 사회경제지표를 실질적으로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지금은 노인 수를 통계에서 줄이는 꼼수보다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하철 무료승차제가 젊은 세대에게 부담을 준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적자를 중앙정부가 보전한다면 납세자 전체가 분담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지금 무료승차하는 노인도 65세까지는 대부분 성실 납세자였을 것이고 65세가 넘어서도 소득세는 안 낼지라도 부가세, 재산세, 자동차세 등의 납세자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젊은 세대의 부담만으로 지하철 적자가 보전된다고 할지라도 젊은 세대도 65세가 되면 무료승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니 2, 30년 후 무료승차할 권리를 지금 저축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65세가 된다. 지하철 적자의 원인을 노인의 무료승차 탓으로 돌리는 궤변은 세대 갈라치기 음모일 뿐이다. 오히려 노인의 지하철 무료승차는 동태적으로 본다면 세대통합과 연대의 표본이다. 헌법 제34조 ②항은 일단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특히 ④항이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노인복지 향상을 특별히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세계 최장수국 일본에 접근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현상이다, 노인 무료지하철 축소는 수명연장을 부담으로 간주한다는 신호이다. 대한민국에게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야 할까? 어느 세대를 위해서든 복지축소 정책은 위헌일 뿐만 아니라 반인간적인 선례를 남기게 된다.
지하철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요금을 인상하거나 정부지원을 결정하기에 앞서 비용구조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합리적인 자회사 설립과 외주사업의 확대, 민자사업의 확대는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도 대부분 지하철공사의 자체사업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승객과 지하철공사의 관점에서 볼 때 직영보다 민자지하철이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은 승객이 민자지하철로 환승할 때 지불해야 하는 추가운임에서 확인된다. 민자지하철을 운영하기 위해 별도 회사를 설립하고 지하철 환승역에 별도의 개찰구를 설치하는 비용은 민자지하철의 비효율성을 추가로 확인해준다. 승객들이 환승 때마다 승차권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은 덤이다. 공사의 자회사 설립은 퇴직자의 재취업 일자리 만들기에 악용된다. 산하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유관부처의 퇴직관료들을 ‘전문성’을 명분으로 재취업시키는 중앙부처의 ‘관피아’를 흉내내고 있다. 산하기관이나 자회사의 입장에서는 유관부처의 관리감독과 예산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로비용으로 감독기관 퇴직자의 영입을 선호한다. 이러한 유착관계가 초래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가 방만경영의 뿌리를 이룬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유지보수작업의 외주화 실태가 일부 드러났고 ‘메피아’가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공사의 입장에서 볼 때 외주화는 ‘궂은 일’을 떠맡길 수 있고 퇴직자의 재취업 일자리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된다. 하청업체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2인1조 작업’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구의역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비정상적인 관행이 초래하는 고비용 저효율을 해소하는 것은 비단 노인 승객만을 위한 개혁은 아닐 것이다.
‘무임승차’ 논란은 국정철학의 문제이다. 노인을 위한 ‘각자도생’은 지하철 무료승차 폐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코로나 지원금 폐지에서 시작된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 급여축소, 장애인 복지 예산 축소, 일자리 예산 감축 등 전방위적인 복지감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의 ‘3종 개혁세트’가 초래할 반인간적 ‘국가소멸’(윤석열 대통령)이 불평등, 지역불균형(지방소멸), 저출산으로 한국사회의 소멸을 재촉하지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