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노사, '통상임금 조정안' 수용 판사 말 한마디에 수천억이 오락가락

2023-01-12 18:40
재판부, 신의칙 근거 6300억 소급 판결
연간 영업익 60% 해당···산업계 '비상'

​현대중공업 노사의 통상임금 소송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부분 반영한 조정안 수용으로 마무리되면서 산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예측하기 어려운 법원의 판단에 수천억원의 임금 소급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이 ‘신의칙’이라는 주관적 관점에 따라 범위가 판단되는 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나와 회사도 노조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로 인한 경기침체 국면인 올해도 과거 실적을 근거로 한 신의칙 판결이 지속해서 나올 경우 임금 소급분으로 인해 도산을 하는 기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부산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김문관)는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등을 청구한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8일 내린 강제조정 결정을 노사 양측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조정안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소속직원 3만8000여 명에게 약 6300억원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이는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의 2021년 영업이익인 1조854억원의 60%를 넘어서는 금액이다. 그룹 전체의 한 해 영업이익 절반 이상이 추가 임금으로만 지급되게 된 셈이다.

강제조정 내용은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의 취지에 따라 상여금(800%) 전부를 통상임금에 산입해 미지급 법정수당 및 퇴직금을 산정해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임금 소급분을 지급하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는 회사의 주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측은 오는 4월부터 직원과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미지급됐던 임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원의 성향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통상임금이 결정되는 현 체제가 기업의 재정 리스크를 가중한다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은 통상임금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는 법령이나 위임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1997년 근로기준법이 전면 개정되고 현재까지 기업의 실적을 근거로 법원이 통상임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더 큰 범위를, 실적이 나쁘면 축소된 범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앞선 지난해 11월에도 법원은 금호타이어 노동자가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지급액은 약 2000억원으로, 지난해 기준 2조6012억원의 매출 규모를 고려할 때 통상임금을 반영해도 기업 존립이 위태롭지 않다는 판단이다.

반면 2020년 7월 한국GM‧쌍용자동차가 근로자들과 벌인 소송에서는 신의칙을 인정하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사측이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이 발생,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그해 8월 기아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았다.

재계는 최근의 글로벌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급등,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 등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이 극심한 상황에서 법원이 지금처럼 통상임금의 범위를 모호하게 규정한다면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현대제철, 르노자동차코리아, HJ중공업 등이 통상임금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통상임금 범위조차 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법원의 판결에 수천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면 투자 중단을 넘어 일부 기업은 자본잠식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은 물론 노동자도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임금을 산정해야 하는데, 판사의 말 한마디에 수천억원이 오가는 지금의 임금체계는 산업계를 위협하는 주요 리스크 중 하나”라며 “현재 법원의 기조는 ‘임금 소급분을 줘서 회사가 안 망한다면 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