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의 '쌍둥이 적자' 출현 위기…상반기가 최대 고비

2023-01-11 01:00
전문가, 올해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 경고
상품·서비스수지 악화, 기업 실적 줄하향
中의존도·자원무기화 등 글로벌 난제 산적
기업부담 줄이고 수출·공급망 다변화 필요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수출 야적장이 환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올해 거시경제 여건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이미 만성 적자를 기록 중인 재정수지에 더해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쌍둥이 적자(경상·재정수지 동시 적자)' 사태를 겪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업 부담을 낮춰 실적 악화 폭을 줄이고 수출 시장과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기존 틀에서 벗어난 활로 모색이 절실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수출 감소세 지속, 경상수지 악화일로 
10일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6억2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9월과 10월 간신히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내 적자로 돌아섰다.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 상황을 나타내는 상품수지가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엔데믹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크게 늘면서 서비스수지 역시 한 달 만에 적자로 전환됐다. 

이 같은 경제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지난해 12월은 물론 올해 연간으로도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상반기가 고비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품 수출이 전년 대비 0.7% 늘어나는 데 그치고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보다 3.7%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경상수지는 20억 달러 흑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200억 달러 흑자)보다 90% 이상 줄어들게 된다.

다만 한국은행 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출 부진과 수입 증가세가 확대되면 흑자 기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정보통신(IT) 업황 부진 등으로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예상보다 가파를 수 있다.

지난해 8월 말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던 국제 유가도 최근에는 안정 국면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간 신경전 등 유가를 널뛰게 할 변수가 사라진 건 아니다.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이 실적 목표를 줄줄이 하향하고 있는 것도 올해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경상수지 중 또 다른 한 축인 서비스수지 역시 전년 대비 악화할 공산이 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해외여행 수요는 올해 추가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둔화하면서 운송수지 흑자도 줄어들 전망이다. 모두 서비스수지 적자 폭을 키울 요인들이다. 
 
"쌍둥이 적자 가능성···돌파구 마련 절실"
우리나라가 연간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건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이 마지막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에도 월별로 적자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연간으로는 17억53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사회보장성기금)는 이미 15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도 58조2000억원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쌍둥이 적자'가 나타날 조건이 성숙하고 있는 셈이다. 

박석재 우석대 경제학부 교수(한국무역학회장)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게 문제"라며 "이런 요인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올해 쌍둥이 적자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투자 강화 등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에는 되도록이면 합리적이고 저렴한 재화를 많이 썼는데 지금은 자원의 무기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식량 자원도 무기화할 수 있는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 때 실패해 비판을 받았던 자원외교에 다시 나서 공급망 위기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간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성 교수는 "무역수지가 이렇게 악화하고 있으면 사실상 경상수지에 대한 부정적인 압력이 높아져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기업 부담을 줄여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210억 달러)와 한은(280억 달러)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를 공언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이후 수출 부진이 완화되고 수입도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상품수지 흑자 폭이 다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는 당분간 경상수지에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흑자 기조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지난달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향후 국제 유가 하락으로 수입 감소가 기대되는 반면 글로벌 경기 둔화, 국내 물류 차질 등 수출 불안 요인도 상당해 당분간 월별로 경상수지에 높은 변동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에너지 절약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소득수지 개선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외 투자 수익에 대한 원활한 국내 환류를 적극 지원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