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제는 수건 돌리기 끝낼 때다

2023-01-04 08:00

[임병식 위원]


이번에는 가능할까. 김진표 국회의장이 띄우고 윤석열 대통령이 화답한 선거제도 개혁이 새해 벽두를 달구고 있다. 김 의장은 2일 “총선 1년 전에 완수하겠다”며 구체적 일정까지 밝혔다. 김 의장이 밝힌 로드맵은 이렇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2월 중순까지 복수 이상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한다. 이후 국회의원 299명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3월 중순 확정한다. 윤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 필요성을 언급하며 힘을 보탰다. 핵심은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두 가지 제도가 시행되면 양당 독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다당제가 가능하다. 소수의견을 반영함으로써 지역구도에 기생하는 극단적인 대결 정치 완화도 기대된다.

중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2명 이상 후보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현재는 1개 선거구에서 1명만 선출한다. 이러다보니 한 표라도 많은 후보만 당선된다.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 의사는 매몰될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과 진영대결, 지역주의 심화라는 모든 고질적 병폐가 소선거구제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 아니다. 윤 대통령이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다 보니,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만 깊어졌다”고 진단한 건 이 때문이다. 김 의장이 “소수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 도입을 통해 승자독식 정치를 협력 정치로 바꿔야 한다”며 소선거구제를 포함한 국민통합형 개헌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국회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통합이나 대표성 강화 등 대의보다는 자신의 당선 여부를 우선시 해왔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갖는 폐해는 간단치 않다. 특히 지역투표 성향이 강한 영남과 호남에서 정치 지체는 심각하다. 온통 특정 정당 일색이다 보니 국민통합은커녕 정치가 갈등과 증오를 분출하는 진원지로 비판 받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전북전남광주지역 호남 국회의석 28개 가운데 27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반면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지역 영남 65석 가운데 국민의힘은 56석이다. 정치지형이 극단적으로 획일화되는 바람에 견제와 균형은 실종됐다.

지방정치 또한 다르지 않다. 2018년 7대 지방선거 결과다. 도지사와 시장, 군수, 시‧도의원을 합한 호남지역 선출직은 628명이다. 이 가운데 보수 정당은 몇 명이나 될까. 놀랍게도 한 명도 없다. 반면 민주당은 492명, 80%를 장악했다. 나머지는 무소속 또는 정의당이다. 아무리 호남피해 의식에 기인한 ‘묻지마 투표’라지만 ‘628대 0’은 기형적이다. 영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울·경’ 596명 가운데 72%, 또 TK 420명 가운데 73%를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탄핵 직후라서 그나마 민주당이 선전한 결과가 이렇다. 2021년 8대 지방선거에서는 다시 보수 지형이 강화됐다. 지방정치가 비리 온상으로 전락한 건 소선거구제가 가져온 폐해다.

소선거구제는 국민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전체 유권자는 2874만1408명이었다. 이 가운데 10명 중 4명(43.7%, 1256만7432표)이 던진 표는 흔히 말하는 ‘사표(死票)’처리됐다. 한 표라도 더 얻은 1명만 선출하다보니 나머지는 허공에 떴다. 선거 결과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55.9%를 득표했음에도 86.2% 의석(영남 65석 가운데 56석)을 차지했다. 반면 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무려 96.4% 의석(호남 28석 가운데 27석)을 싹쓸이했다. 쉽게 말하자면 영남과 호남에서는 국회의원과 시장‧군수, 지역의원까지 죄다 특정 정당이 독식하면서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해묵은 숙제다. 정세균 국회의장 시절에도 직속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개헌을 추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김진표 의장이 다시 선거제도 개혁에 불을 붙인 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정치권 안팎에서 공감대도 크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누구보다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 왔다.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도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첫 토론회를 연 이후 광주와 대구에서 순회 토론회를 열고 공론화에 나섰다. 또 조만간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거제도 개혁 원칙을 발표할 계획이다.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그리고 소선거구제를 통해 지역구 의원 200명 정도를 뽑고, 나머지 100명은 전국을 8개 권역으로 나눠 정당이 공천한 비례대표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청년 정치인 모임인 ‘정치개혁 2050’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선거구제 폐지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골자다. 원로 정치인과 학계·시민사회에서도 논의가 활발하다. 승자가 독식하는 선거제도를 바꿔야 우리 사회가 나아갈 수 있다는 공감대를 바탕에 두고 있다. 남인순 국회 정개특위위원장은 “법정 시한(4월 10일) 안에 복수 개혁안을 내고, 국민 공론화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당 국고 보조금은 142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정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세금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민주당(684억원)과 국민의힘(602억원)이 90.7%를 독식했다. 다양성을 상실한 한국 정치가 초래하는 또 다른 현상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이유가 이러한 단물 때문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설마 꿀단지를 놓치고 싶지 않아 미적거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총론만 무성할 뿐 각론에 들어가면 소극적인 행태를 볼 때 합리적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이제는 필요성도 인정하고 공감대도 무르익었다. 더구나 지금은 여소야대 상황이라서 적기다.

윤 대통령은 지금은 물론이고 후보 시절에도 “정치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해왔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또한 지난해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다양한 의사가 정치로 수렴되려면,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 의장도 의지가 단단하다. 관건은 어떻게 구슬을 꿸지 의지에 달렸다. 이번에도 이해득실 때문에 그르친다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해둔다. 수건 돌리기를 끝낼 때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