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년,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주 52시간+·임금체계 개편, 미래세대 위한 '최후의 선택'

2023-01-01 14:00
윤석열표 노동개혁 성공할까
尹 "개혁 못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한다"
70년째 변화없는 노동시장 틀 교체 시도
연장근로 단위 다양화…주 69시간 가능
노동계선 거센 반발…보수 내서도 이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년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개혁 추진 원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노동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인기가 없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 또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취임 2년째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유연성 △공정성 △안전 △안정성이라는 4대 원칙도 일찌감치 마련했다.
 
尹 "올해는 노동 개혁 원년···실패 땐 경제 망해" 
윤 대통령은 신년을 앞두고 노동 개혁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달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패널 100인을 선정·초청해 개최한 '1차 국정과제점검회의-국민과의 약속, 그리고 실천'에서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노동 개혁은 미래 세대에게 자기 역량을 발휘할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 수요에 따른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노사 관계에 있어 협상력이나 노동시장에 있어 이중 구조 개선 등 차별이 없는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노동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정쟁과 어떤 정치적 문제로 흘러버리게 되면 정치도 망하고 우리 경제도 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청년 200여 명과 3대 개혁 등을 주제로 주재한 간담회에서도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노동 개혁"이라며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면서 노동을 존중하는 노동 개혁이 이뤄질 수 있게 힘을 보태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노동 개혁 4대 원칙도 소개하며 "제 임기 내에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바꿀 수는 없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 과제들이 후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추진한 뒤 나머지는 여러분이 잘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왼쪽 둘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전문가들, 연장근로 단위 '주'→'최대 1년' 개편 제안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교수 12명으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출범했다. 외형상 민간 연구회지만 정부 예산도 지원받으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우선 추진 과제인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을 집중적 논의했다. 출범 5개월여 만에 권고문도 내놓았다.

연구회가 정부에 권고한 노동시장 개혁 방안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째 변화가 없는 노동시장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까지를 허용하는데, 연구회는 노사 합의를 거쳐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다양화할 것을 권고했다. 한 주에 69시간까지 일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윤 대통령 생각을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2021년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게임 하나 만들려면 한 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더라"며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담겨 있는 '노사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와도 궤를 같이한다.
 
일각에서 나오는 '장시간 근로' 우려에 대해 연구회 수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빈번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완 장치도 마련했다. 월 단위 연장근로시간 52시간을 기준으로 분기는 156시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는 312시간 대비 80%인 250시간, 1년은 625시간 대비 70%인 440시간만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도 제시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모든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할 수 있게 하자는 권고도 내놓았다. 유연근무제 중 하나인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자가 근로일·출퇴근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근로기준법 제52조에 규정돼 있다. 노동자 필요에 따라 주 4일제나 시차 출퇴근 등을 활용하도록 했지만 2021년 기준 도입률은 6.2%로 저조한 상황이다.
 
연구회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제안했다. 노동자가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근로시간 계좌'에 저축해 뒀다가 필요할 때 휴가로 쓰거나 임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 역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서 제시한 내용이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정년연장'도 시동···政 "근로·임금개혁 조속히 입법"
연구회는 근무 연수에 따라 급여가 오르는 연공급제(호봉제) 개편을 정부에 권고했다. 현행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회는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는 기업의 신규 채용 기회를 제약한다"며 "중·고령 근로자 고용 유지에도 부정적이며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임금체계 자체가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를 구축하라고 제언했다.
 
정년연장 논의에 관한 불씨도 지폈다. 계속고용은 만 60세인 정년이 지나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정년 연장·폐지와 재고용 등을 모두 포함한다. 연구회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고려해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한 60세 이상 계속고용 법제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재 만 62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올해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5년마다 한 살씩 늦춰진다. 정년연장은 앞서 고용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서도 언급한 내용이다.
 
연구회는 포괄임금 오남용을 막기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포괄임금 약정 오남용으로 공짜 노동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연구회 권고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권고문이 나온 날 본인 페이스북에 "노동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며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이른 시일 내에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적었다. 아울러 "노동시장 개혁을 온 힘을 다해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당장 이달부터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하는 기업에 대한 기획감사에도 나설 예정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6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용질 저하" 노동계 반발···보수 진영도 쓴소리 
정부가 노동 개혁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까지 내놓았지만 실제 달성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노동계 반발이 거세다. 한국노총은 연구회 권고를 두고 "노사 선택권을 빙자한 장시간 노동체계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사용자에 대해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 노동은 더욱 심화하고, 이는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도 "윤석열 정부 의도에 맞춘 임금·노동시간 개악 시나리오"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불평등·양극화를 극복하려는 진정성 있는 연구가 아닌 재벌과 사용자 요구에 따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노동 개악을 연구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윤석열 정부표 노동 개혁을 두고 쓴소리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용부 장관을 지낸 이채필 전 장관은 지난달 21일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 공부모임인 '국민공감'에서 과거 정부 주도로 노동 개혁이 실패한 경험을 설명하며 "성급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노동 개혁 추진 방법과 전략은 성급하고 의뭉스럽다"고 지적하며 "노동 개혁을 이루려면 초기부터 노사 각계 목소리를 수렴해야 한다"고 고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