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한국 사회, 불신이 쌓인다
2022-11-18 06:00
신뢰란 타인의 행동에 대한 주관적 기대이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기대에는 사회적 관계 속 믿음이라는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정치권부터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흐려지고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마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하여 아쉬울 뿐이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안타까운 추모 기간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에서 시작된 정쟁의 조짐은 희생된 안타까운 젊은이들을 기리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책임, 누군가의 퇴진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MZ세대에 대한 이해를 부르짖던 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태원이라는 장소와 핼러윈이라는 두 단어를 세대적 특성에 대해 비하하는 혐오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도 하였다.
대통령 역시 언론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며 민주주의를 잊은 듯 이번 순방에서 특정 언론을 배제하였다. 하다못해 그간 보수 신문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한국신문협회의 입장 철회 요청마저 가볍게 모른 척하였다.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진정 대통령 주변에 이를 잘못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인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한쪽에서는 도 넘는 막말을 제기한 종교계 역시 잘못이다. 자기 식구 잘못을 감싸기보다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인에게는 그 나름의 위치가 있다. 자신의 언행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절대 개인적인 생각이라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배울 만큼 배운 알 만한 분들이 그러니 더욱 섭섭하다. 본인의 위치를 잊은 시정잡배와 같은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역시 종교계 전체를 싸잡아 문제를 삼는 것은 똑같이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예전 수업 중 우리나라 1990년대 외환위기(IMF)의 원인에 대해 일부 학생들이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 답을 하여 기가 찼던 적이 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들었냐 했더니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다 하더라. 정말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무분별한 해외여행과 외제 사치품 구매라고 선생님께 배웠다는 학생들 대답에 한 번 더 기가 찼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직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 국가와 기업은 외면해도 우리 국민들은 문제를 직시하였다. 그러기에 위기에 더욱 강해지고 서로의 힘을 합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안타깝다, 보기 싫다,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잘못된 내용을 마치 사실인 양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사고를 강요한 어른들이 문제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이태원 사태 역시 머지않은 미래 우리네 교과서에 어떻게 담길지 심히 걱정이 된다.
정말 안전에 대한 불감증 때문일까, 이태원에 간 그들만의 문제일까, 이러한 논쟁으로 인해 여전히 시끄럽고 향후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은 신뢰를 잃은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대개 말의 내용보다 말을 하는 사람 혹은 상황이나 프로세스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일단 긍정적으로 인식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좋은 이야기, 옳은 이야기라도 비꼬아 생각하게 된다.
금요일 밤, 모 텔레비전 모창 가수를 찾는 프로그램에서 곧잘 거짓말을 했던 MC 전현무의 말을 믿지 않는 상황이 방송되었다. 해당 연예인은 짜인 대본 탓인지 쉽게 진실을 믿지 못하더라. 정말 당황한 전현무의 표정 속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때의 답답함, 고구마를 열 개라도 먹은 표정이었다.
현 정부가 해야 하는 첫 번째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보안 방법론에 있어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라는 방법이 있다. 말 그대로 불신을 반대로 신뢰를 획득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우리네 사회에 적용하면 그 사람을, 그 상황을 배제하고 보는 것이다. 과거 무학대사는 돈안지유돈 불안지유불(豚眼只有豚 佛眼只有佛)이라 하였다. 풀이하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우리 국민의 성숙하고 변화된 행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던 시간이 있었다. 지난주 제주도로 학회와 세미나를 다녀왔다. 수요일 저녁에도 남아 있는 좌석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비행기 속에서도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예전과는 무엇인가 변화된 느낌이었다.
물론 착륙 후 곧바로 짐을 꺼내고 먼저 통로로 나서는 마음 급한 승객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가벼운 부딪침에 화를 내고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눈에 보였다. 바쁜 사람들도 아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가벼운 목례로 양해를 구하는 모습은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어둠이 짙어 한결 차분해진 제주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지금의 사태는 잊힐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