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폴란드와 원전 개발계획 수립에 합의하며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에 대규모 해외 원전 수출의 물꼬를 텄다. 앞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를 사업대상자로 선정한 폴란드 정부 주도의 원전 사업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현지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최대 4기의 원전 수출이 기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한국수력원자력, 폴란드 국유재산부·ZE PAK·PGE와 원전 개발계획 수립을 위해 기업간 협력의향서(LOI)와 정부부처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체결식에는 이창양 산업부 장관과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협력의향서에는 우리나라의 한수원과 폴란드 민간발전사 ZE PAK, 폴란드 국영 전력공사 PEG 등이 현지 퐁트누프 지역에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기술을 기반으로 원전 개발계획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폴란드 원전) 수출 규모는 최대 2기에서 4기가 될 것"이라며 "민간이 주도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폴란드 정부 원전 사업과는 별개로, (사업자 선정을 위한 별도의) 입찰 과정 없이 LOI, MOU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수원은 폴란드 정부가 현지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지역에 6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사업의 수주를 위해 입찰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미국 업체인 웨스팅하우스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날 양국이 협력에 합의한 원전 사업은 사실상 폴란드의 두 번째 원전 건설 프로젝트로, ZE PAK이 2024년 말 가동을 중단하는 현지 화력발전소 부지 등에 원전을 짓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7년 러시아 업체가 이집트 엘다바 지역에 원전 4기를 짓는 사업을 300억 달러(약 39조원)에 수주한 것을 고려할 때, 이번 폴란드 원전사업의 수주 규모는 약 42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부는 이날 체결식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13년 만에 두 번째 원전 노형 수출의 물꼬를 트면서 APR1400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올 8월 한수원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업 일부를 수주했지만 이는 원자로 건설이 아닌 발전을 위한 '원전 기자재·터빈 시공 분야'로 수주 규모도 3조원 수준이다. 

한수원·ZE PAK·PGE는 LOI에 따라 올 연말까지 APR1400 기술을 기반으로 원전 건설에 대한 계획을 공동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전이 건설될 퐁트누프 부지의 지질공학, 내진, 환경조건 분석을 수행하고 양측이 합의한 재원 조달 모델에 맞춰 사전 작업–건설-운영 단계별 예산을 추산하기로 했다.

정부는 폴란드 원전 수출 최종 계약 시 우리나라가 2009년 아시아(UAE), 2022년 아프리카(이집트)에 이어 유럽 원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공약한 윤석열 정부의 계획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창양 장관은 "이번 프로젝트는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원전수출 의지와 정책이 뒷받침된 성과"라며 "최종 계약이 성사될 경우, 일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원전 업계에 일감을 제공해 국내 원전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