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탈(脫)세계화 시대 … '한국형 세계화'의 길

2022-10-26 16:05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신(新)냉전과 탈(脫)세계화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원이 있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점을 확보한 국가들은 이를 지렛대로 활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가 태동하는 과정에서 각자도생하면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편과 저편을 기웃거리는 기회주의가 난무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한다. 기업은 물론이고 자금이나 인재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쌍두마차인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기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중국은 막 끝난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3기 출범을 공식 확정했다. 미국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한 고육지책의 선택이지만 험난한 여정이 예고된다. 견제가 없는 1인 지배 체제를 완성하였으나 안팎의 도전이 절대 만만치 않다. 외견상으로 보면 일단 빗장을 걸었다. 10년 전 집권 초기부터 내건 ‘중국몽(蒙)’의 실현 수단으로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외수보다는 내수에 치중하는 ‘쌍순환(双循環)’의 기치를 더 분명히 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으로 유지해온 선부론(先富論)을 장롱 속에 묻고,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같은 대외 정책은 구조조정을 통한 축소를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일정 기간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더 강경한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해 나갈 것이 확실하다.
 
미국 바이든 정권의 전방위적 중국 때리기 수위는 갈수록 높아진다. 올 11월 중간선거와 2년 후 대선을 겨냥하여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표몰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미국 여론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이를 거든다. 표면적으로 시진핑 정권이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것처럼 보이지만 비판적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고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미국이 고삐를 바짝 조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킹달러’ 추세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요인이 없지는 않지만 중국 등 주요 경쟁국 경제에 더 치명타를 가하고 있어 당분간은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밀어붙일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계속 끌고 갈 공산이 크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가장 고통을 받는 쪽은 역시 기업이다. 특히 글로벌화에 익숙해져 있고 이를 통해 시장의 지배력을 확대해 나가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세계화의 후퇴에 직면해 기업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가 이들에게 닥친 긴급한 현안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중국 시장 포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순히 기업이나 상품, 자본에 더해 기술까지 포함돼 있어 과거와 같이 안일하거나 무차별적으로 세계화 흐름에 편승하여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한 한국 기업이 향후 어떤 진로를 선택해 나갈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가는 세계화’만이 아닌 ‘들어오는 세계화’ 강화를 통한 균형적 접근 필요
 
글로벌 기업들은 미·중 충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있어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여 제3국 시장까지 판로를 겨냥하는 전략은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에서 생산하고 현지 시장에서만 판매하는 중국 시장만을 타깃으로 하는 ‘Only Chinese Market’ 방식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전기차와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기업들이나 일본 기업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동승하고 있다. 생산시설을 중국과 비(非)중국으로 양분하여 미국의 강경한 조치를 피해 나가면서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외국 기업의 탈(脫)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각종 당근책도 한몫한다.
 
최근 해외 전략에 대해 중심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한국 기업에 충분히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많은 기업이 중국 시장 포기에 대해 주저한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중국 사업을 어떻게 교통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해외 생산 라인을 중국과 중국 이외 지역으로 나누는 ‘China+1’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비즈니스 환경이다. 다만 중국의 미래 수요에 맞출 수 있고, 중국 시장 내에서 외국 기업과 로컬 기업의 경쟁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남는 것이 떠나는 것보다 득이 크고 실이 적다면 당연히 잔류가 맞다. 전자·IT 기기 혹은 자동차와 같이 무모하게 투자하여 된서리를 맞고 있는 우리 대기업의 실패 사례를 거울 삼아 무모한 투자는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대외 환경이 악화해도 세계화는 우리 국가나 기업의 생존을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글로벌 통상 분쟁이 격화되고 있고 다수 국가가 가진 것을 무기화하고 벽을 높이고 있지만 우리까지 이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단순 생산기지 이전, 시장 우회, 지식재산권 침해 국가에 대한 민감 기술 노출 등 미국 주도의 질서에 위촉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변형된 전략을 과감히 전개해야 한다.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전략적 테크 동맹을 맺는 것도 더욱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단순히 나가는 세계화에만 목매지 말고 들어오는 세계화에 대해서도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절름발이 세계화에 종지부를 찍고 외국 기업·자금·인재·기술이 모이도록 국내 생태계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