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남 스페셜 칼럼] 끌려가는 舊권력 … 더 공고해진 '1인 천하'

2022-10-25 20:28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교수]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서구의 근대화의 길과 다른 이른바 ‘중국식의 근대화’의 길을 갈 것"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이른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하여 ‘현대화’를 이끎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상을 이끌어내고 인류 신문명을 창조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한마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상이라는 민족주의적인 목표를 사회주의 방식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중국공산당과 당의 핵심인 시진핑의 역사적 사명이다.
지난 10년간 시진핑은 당의 위상과 권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당의 ‘핵심’으로서의 최고 지도자의 위상을 연결시켜서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강화해 왔다. 4000개의 공산당 내 규정 중 70% 이상을 지난 10년 동안 새로 제정 및 수정하면서, 당내 법규와 제도 정비를 통해 당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했다. 그리고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당은 중국의 일체(一切)를 영도한다”는 원칙을 ‘당헌’에 명문화했다. 또한 중화민족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려면 공산당이 자기혁명을 해야함을 강조하면서, 마오시대 이후 가장 맹렬한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여 정적을 제거하고 자기 사람으로 교체하였다. 대규모 당 역사 선전 및 교육 캠페인을 통해 사상 주입을 강화하고, 주요 국가기구, 국유기업과 민간기업, 사회단체, 군대에 이르기까지 당의 통제를 확대하였다.
동시에 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시진핑의 권위도 강화하였다. 2016년 당내 ‘핵심’지위가 부여되고,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당헌에 명문화하였으며, 뒤이은 전국인대에서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주석 임기제한을 쳘폐하여 장기집권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또한 2020년 10월에는 이른바 ‘두 개의 수호(兩個維護: 시진핑 당중앙 및 전당의 핵심지위의 수호, 중공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영도의 수호)’와 2021년 8월에는 이른바 3차 ‘역사결의’를 이끌어내고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 시진핑 당중앙과 전당의 핵심지위 확립,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을 이끌어내 마오와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가 된다. 이제 총서기는 정치국상무위원 중 "동등한 사람 중 첫 번째"에 불과하고, 정치국상무위원 간의 권력과 책임의 분담하에 합의를 통해 리더십을 행사한다는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시진핑 ‘핵심’의 '1인우위(定于一尊)'의 통치로 대체되었다.
또한 20차 당대회를 통해 당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및 정치국상무위원회를 ‘충성파’를 중심으로 편제하여, 최고위급 인사 배치까지 장악함으로써 당내에서 '1인 우위' 지위를 공고화했다. 자신과 의견 불일치의 가능성이 있는 리커창과 왕양 등 공청단파를 퇴각시키고, 자신의 옛 부하거나 비서, 동향으로 충성도가 높은 4명의 신임 정치국상무위원을 배치했다. 정치국원의 구성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3명의 성당서기를 제외하고도 충성도 높은 지방관료 9명을 배치함으로써(19대 6명), 실무형 친위 지도체제를 구축했다. 2인자를 두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드러냈다. 일찍이 후보자로 거론된 천민얼은 상무위 진입에 실패했고, 후춘화는 중앙위원으로 강등되었다. 신화통신이 이번 인사를 '정치적 기준을 최우선으로 하였음을 발표한 것에 기초해볼 때, 당과 시진핑에 대한 충성 중심 원칙에 입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집단적 권력승계의 암묵적인 제도적 기초로 작용해 온 ‘7상8하’ 나이 제한, 임기제, ‘격대지정(현 지도자가 한 대(代)를 뛰어넘어 그다음 세대 지도자를 미리 정해 권력승계를 투명하게 하는 방식)’의 관행이 파괴됨으로써, 중국공산당 지도부 인사는 불확실성의 영역이 되었다.
더구나 지난 10년간의 반부패운동에서 집중적인 타격대상이 된 장쩌민계의 몰락과 함께, 그동안 개혁개방노선을 주장하면서 시진핑과 갈등을 보여온 리커창을 비롯한 공청단파도 완전 붕괴되었다. 시진핑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공청단파 후춘화 부총리는 상무위원은커녕 중앙위원으로 강등되었다. 40년 만에 정치국에 공청단파가 없다. 더군다나 공청단파를 대표하는 전임 최고지도자 후진타오는 회의 도중 회의장에서 미심쩍게 퇴장당함으로써, 그 이유가 무엇이든 원로지도자 세대의 쇠락을 보여주었고, 공청단파의 몰락을 상징하였다. 이제 당내에서 시진핑 친위세력을 제외한 다른 파벌들이 몰락함으로써 최고 지도부 내 파벌간의 견제와 균형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정 최고권력 기구의 시진핑 친위체제 구축이 의미하는 바는 시진핑이 그동안 제기했던 각종 정책구상이나 이념이 별다른 견제 없이 향후 정책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당내의 정책방향을 둘러싼 논쟁이나 저항, 또는 불일치가 제거될 것이며, 시진핑은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문제는 시진핑이 그동안 제기한 각종 이념 및 정책적 구상은 실제 추진과정에서 일정한 조정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개혁개방과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 기조와 다소 거리가 있다.
그는 서구식 발전경로를 따르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중국식 현대화"를 제기했다.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즉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하에 중화민족의 부상을 이끌 것임을 공식화했다. 사회주의 담론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국내외 문제 분석과 행동의 지침이 되고 있다. 공산당원으로서 혁명정신을 지키고 투쟁정신을 고양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민의 공동부유는 중국식 현대화가 사회주의적 성격을 구현하는 데 있어 핵심요소임을 강조하면서 공동부유정책을 제기하고, 쌍순환 경제구조(국내경제순환과 대외경제순환 병존) 및 자립적 기술창신을 강조하는 등 개혁개방과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보다는 자급자족 경제의 길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시진핑 주석의 개혁개방정책은 덩샤오핑시대(장쩌민, 후진타오 시기까지)와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이 서구사회와 다른 방식의 사회주의 근대화 경로로 간다면 그동안 중국이 추진해온 개혁개방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의 개혁개방은 주요하게 중국의 서구국가에 대한 개방과 시장경제체제 속으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시진핑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식의 현대화 방식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식 현대화노선의 공식화는 서구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천명하고, 내정간섭을 거부하면서 미국과 체제와 이념 경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것은 이미 갈등의 쟁점이 된 미·중간 이념과 체제경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진핑이 중국은 '전략적 기회와 위험, 도전이 공존하는 시대'에 진입했으며, "국가 안전 체제와 능력의 현대화를 추진"하여, 체제, 제도, 이념, 식량, 에너지, 산업공급망 등에서 신안보구조를 확보할 것을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더구나 당대회보고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타이완과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사용도 불사’한다는 표현은 통일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겠지만, 국제사회의 눈에는 가히 위협적이다.
3기로 들어선 시진핑 정권이 직면한 상황은 만만찮다. 권력에서 배제된 공청단파와 장쩌민파, 그리고 당내의 개혁개방파들의 불만이 증폭될 것이다. 지식인과 시민사회에서도 퇴행적 정치발전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각한 경기침체는 시진핑 정권을 더 압박한다. 첨단기술을 동원한 통제, 국가 안전기관 및 경찰 동원, 그리고 사상교육을 통한 통제가 시진핑 ‘1인 우위’ 통치의 ‘신시대’에 일상화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정남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교수 ▷미 하버드대 페어뱅크 센터 중국연구소 방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