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기 출범] 中최고지도부 점령한 '시자쥔' 군단...시진핑 1인 통치시대로
2022-10-23 17:44
리창, 서열 2위 총리·자오러지 3위 전인대수장 '예약'
7위까지 모두 '시진핑 충성파'와 측근들로 채워
7위까지 모두 '시진핑 충성파'와 측근들로 채워
이번에 상무위원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리창,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은 모두 시진핑 주석 측근, 이른바 시자쥔(習家軍, 시진핑 주석의 옛 부하)이다. 여기에 기존 상무위원이던 왕후닝, 자오러지는 시 주석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준 인물이다. 7인 상무위원이 모두 완벽한 시진핑 주석 세력으로 채워지면서 시 주석의 1인 집권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지도부 출범 직후인 2013년 1월 저장성 성장에 오른 그는 외곽에서 시진핑을 지원해왔다. 2015년 9월에는 시진핑의 미국 방문을 수행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시진핑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16년 장쑤성 서기로 승진한 데 이어 2017년 19기 중앙정치국원으로 선출되며 상하이시 서기로 발탁됐다.
그는 올해 4월 상하이에서 코로나가 확산해 도시가 장기간 봉쇄하면서 경제가 충격을 입고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실패한 전례가 있지만 사실상 차기 총리직을 예약했다.
자오러지는 1975년 7월 공산당에 입당, 1980년 1월 베이징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당교 연구생을 지냈다. 1980년 칭하이성 상업청 근무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칭하이성에서 근무했다. 2000년 칭하이성 성장으로 발탁돼 중국 '최연소 성장'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목받았다. 이어 2003년 칭하이성 1인자로 올라서며 '최연소 당서기'가 된 그는 2007년에는 산시(陕西)성으로 자리를 옮겨 당서기를 맡았다.
자오러지는 산시성 당 서기 시절 시진핑 숭배에 열렬히 앞장서면서 시진핑에게 특히 신임받았다. 이후 자오러지는 2012년 18기 중앙정치국원으로 입성, 2017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직을 수행하는 등 권력 핵심층으로 다가갔다. 시진핑 집권 2기에는 왕치산을 대신해 반부패 사령탑을 맡아 반부패 사정 작업을 총지휘했다.
왕후닝은 1955년 산둥성 라이저우시 출신으로, 1984년 4월 공산당에 입당했다. 왕후닝은 1995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측근이던 쩡칭훙의 눈에 들어 당 중앙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면서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그는 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팀 팀장, 부주임을 거쳐, 후진타오 집권 시기엔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까지 발탁, 15년간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에 재직하면서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등 역대 주석의 지도사상을 정립했다.
왕후닝은 시진핑 집권기에도 시진핑의 주요 정책과 사상·이론 체계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로 만들고, 미국의 견제에 맞서 '자강론'에 입각한 부국강병을 외치는 시진핑의 여러 공약은 왕후닝의 제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55년 푸젠성 융안에서 출생한 차이치는 1975년 공산당에 가입했고, 그해 추천을 받아 푸젠사범대에 입학했다. 4년간 정치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한 이후 학교에 남아 일을 했고, 1983년 푸젠성 위원회 판공실에서 근무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차이치도 과거 푸젠·저장성에서 근무할 당시 10년 넘게 시진핑을 보좌해 온 충실한 옛 부하인 즈장신쥔 중 하나다. 2014년 시진핑은 저장성 상무부성장으로 있던 그를 중앙으로 불러들여 신설 중앙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이라는 직책을 맡겼다. 이후 그는 2016년 말 베이징시 대리시장, 이듬해 1월 정식 시장에 선출됐고, 이어 5월 베이징시 당서기까지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렸다. 19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 후보위원-중앙위원 두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중앙정치국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열 6위='시진핑 비서실장' 딩쉐샹···차기 상무부총리로
1962년 9월 장쑤성 난퉁에서 출생한 딩쉐샹은 1978~1982년 동북중형기계학원(현 옌산대학)에서 기계제조를 공부했다. 졸업후 상하이소재연구소에 취직했고 1984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상하이소재연구소 소장 등을 거쳤고, 부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1989~1994년 푸단대행정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시자쥔의 대표 선두주자로 꼽힌다. 시진핑의 '그림자'로 불리며 묵묵히 그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왔다. 2007년 3~10월 시진핑이 잠깐 상하이시 당서기로 재임할 시절, 딩쉐샹은 상하이 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시진핑의 비서로 발탁됐다. 당시 시진핑과 함께 근무한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 그는 시진핑의 신뢰를 얻었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등극한 2013년 딩쉐샹은 베이징으로 올라와 당중앙판공청 부주임을 맡았다. 2017년 제19기 1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됐고, 당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했다.
1956년 10월 간쑤성 량당에서 출생한 리시는 1978~1982년 시베이사범학원에서 중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간쑤성 선전부 간사 등을 맡았고, 198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2014~2015년 랴오닝성 부서기 대리성장, 2015~2017년 랴오닝성 서기를 거쳐 2017년 중앙으로 진출한 후춘화의 후임으로 광둥성 서기로 임명됐다. 제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됐다.
리 서기는 시진핑과 직접 근무한 경험을 없지만,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 전 부총리의 동료인 리쯔치 전 간쑤성 당 서기의 비서를 지낸 경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시자쥔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