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표준리더국 향한 두번째 도전장

2022-10-24 17:30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지난달 간절히 바랐던 기쁜 소식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총회로부터 들려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이 선출되었다는 그 주인공은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향후 2024년부터 2년간 회장을 맡게 되었다. ISO는 세계 3대 공식 대표표준화기구 중 하나로 지금껏 제정된 국제표준 수가 2만4335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 표준기구이다.

주변분들께 당선 소식을 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물음이 ISO 회장 연봉은 어떻게 되느냐?, 대표님께서 회장이 되셨으니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분이 많았다.

우선 아쉽게도 ISO 회장은 연봉이 없는 명예직이다. 가뜩이나 국제 정세가 어려운데 당선과 더불어 외화수입까지 이루어졌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 역할이 중하기에 기대도 크다. ISO 회장은 총회와 이사회 의장으로서 의사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만큼 이번 당선의 의미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제표준화 관련 핵심 정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첫 번째 입후보에 회장 당선의 영광을 얻은 것은 단순한 요행의 결과가 아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국제표준화 활동 성과 및 산업화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표준화기구에 기여하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 회장 진출을 도모해 왔다. 1963년 국제표준화기구 가입 이후 20여 년간의 이사회 활동과 국제표준화 성과를 통해 이번 영광이 마련되었다.

또한, 들리는 이야기에 ISO 회장이 글로벌 표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우리나라 정부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조 대표의 당선을 응원했으며, 우리 정부 역시 조 대표의 당선을 위해 민관 합동 선거 대책 태스크포스(TF)를 조성했었다. 현대차그룹의 지원은 물론 국가기술표준원을 중심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KOTRA, 한국표준협회 등이 전략적인 교섭 활동을 펼친 결과이기도 하다.

그 덕분인지 이번 회장 당선과 함께 우리나라는 ISO 기술위원회를 관리하는 기술관리이사회 이사국으로 재선출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국제표준화기구 회장은 물론 이사회 및 기술관리이사회까지 국제표준 정책과 전략을 논의하는 주요 정책위원회에서 임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적극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전 세계적 관심인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등의 기반에는 국제표준화가 있다. 이 때문에 표준은 비록 강제력은 없지만,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표준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다만, 표준은 독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 국제기구 및 의사결졍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합의해 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코로나19 이후 국제정세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다시 냉전시대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시작은 중국에 있다. 최근 중국은 국제3대 표준화기구의 대표를 모두 배출했다. ISO와 함께 국제 3대 표준화기구로 꼽히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장(2020~2022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2019~2022년)이 모두 중국사람이다.

이번 회장 선거에 있어 강력한 상대 역시 중국이었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한편으로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ISO 선거 이후, 다음 차례가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표준을 설정하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다.

과거 냉전시대를 연상케 하듯, 미국과 러시아가 이번 ITU 사무총장 선거에서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였다. 미국은 도린 보그단-마르틴 ITU 텔레커뮤니케이션 개발국장을, 러시아는 라시드 이스마이노프 전 러시아 통신부 차관보를 후보로 냈다. 특히 라시드 이스마이로프는 중국 화웨이의 러시아 사업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로 미국을 자극하였다.

미국과 중국은 통신시장에서의 갈등을 시작으로 통상압력으로 연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 5G를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이유 중 하나로 중국이 관련 국제기구의 고위직을 장악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자오허우린 현 ITU 사무총장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무인기,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첨단산업의 표준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미국은 이번 ITU 선거를 인터넷에 대한 규제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와 시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장악하려는 권위주의 국가 사이의 대결로 규정하였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직접 성명을 통해 차기 ITU 사무총장으로 미국 후보에 투표해 달라 제시하였다, 미국의 매체들 역시 이번 선거로 인터넷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총성 없는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번 차기 ISO 회장직의 선출은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과의 공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적 상황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롭게 결속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역시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ITU의 이사국을 8번이나 연임하였음에도 아직까지 고위직인 사무차장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이번 ITU 사무차장직에 우리나라 이재섭 현 ITU 표준화총국장이 도전을 한다. 한 차례의 연임을 통해 무려 8년 가까이 ITU 표준화총국장직을 수행한 베테랑으로 사물인터넷 및 5G 표준관련 특별 연구반을 운영하며, 중국이 2020년 새로운 IP 방식을 통해 인터넷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을 때 조목조목 반박하며 세계 통신 표준의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이다. 우리 정부 역시 발빠르게 선거 관련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어 당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 표준경쟁이 치열해진 상황 속에서 ISO 회장 당선은 표준강국으로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나라가 표준강국을 넘어 표준리더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과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