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경전하사(鯨戰鰕死)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2022-09-22 11:15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뒤 미국을 방문 중이다. 이미 대통령에 앞서 산업부, 기재부, 외교부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 대표단을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장관까지 미국으로 향했다. 이번 대통령의 순방 역시 여러가지 목적과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법의 발효에 대한 논의와 우리 기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주 목적일 것이다.

지난달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과 함께 발효된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시행으로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의 타격이 예상되었다. 해당 법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전부터 추진해 오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BBB)’ 법안을 수정한 것으로 본래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의료 보장 범위를 확대하자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하지만 수정과정에서 지금의 이름처럼 에너지와 의약품 물가를 잡겠다는 의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이라 명명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확산하였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부터 일자리 확대를 위해 인건비와 생산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에 진출했던 미국 기업들의 생산시설을 다시 미국으로 옮겨오도록 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추진 및 강화하였고, 이번 바이든 행정부에서 빛을 발휘해 53년만에 실업률은 3.5%로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더군다나 국가안보와 공급망 강화를 주장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산업을 중심으로 보조금 지급, 세제개혁 등의 방식으로 리쇼어링 지원을 확대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자국의 반도체 사업을 육성하기 위한 『반도체와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과 이번 『인플레이션감축법』 제정 역시, 얼핏 보면 미국 국민의 생활 안정화가 주된 정책 목적으로 국제통상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전반적인 보건, 환경 및 조세 정책의 변화를 야기함으로 인해 미국 시장 내 우리 기업의 경제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Section 13401(청정자동차 세액공제)의 경우로 전기차 구매시 제공되는 보조금(세액공제) 수혜조건이다. 전기차 생산기업의 경우, 탑재 배터리의 광물 및 부품 비율 요건뿐만 아니라 최종조립 요건까지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제품들은 현재의 생산 구조상 세액공제의 대상으로 선정되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중인 한국산 전기차 대부분이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한창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 기아차는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배터리 생산 기업 역시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과 부품 비율 요건도 추가되어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들여와야 하고,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조달해야 한다. 미국 내 부품 조달이 원활히 이루어진다면 모르겠지만, 미국이 내건 우려외국기업(foreign entity of concern)에 명확히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예를 들어,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 관할 내 기업으로부터 조달된 광물이나 부품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경우 처음부터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마디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강대국의 이기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번 법안이 발효됨에 따라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 국내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해도 미국이 스스로 법을 개정하리 만무하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애비가 가도 지금 당장 미국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새로운 법의 발효에 대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과 바뀐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투 트랙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우리편을 늘려야 한다. 이미 우리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적 노력에만 기댈 수는 없다. 이번 법안으로 인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국가가 우리만은 아니다. 일본, 독일, 스웨덴 등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이들과의 연합전선을 구축한 체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내부의 아군을 이용해야 한다. 반대편인 공화당을 포섭하여 중간선거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장하는 ‘미국에서 만든(made in America)’을 강조하는 속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 수십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이를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우려사항과 현재 미국내 투자를 기반으로 이번 법안 발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어필함으로써 반대파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였음에도 아직 반성이 필요하다.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이후 우리는 국산화에 총력을 쏟았다. 연 2조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비용을 통해 반도체 소부장 국산화에 노력하였다. 또한 중국의 요소수 공급 중단과 같은 사례를 통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이 지금과 같은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무역전쟁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을 익히 경험하였다.

우리 기업들의 높은 특정 국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에 대해서는 반성이 요구된다. 앞서 말했듯 법에서 중국을 콕 짚어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법안 제정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 속에 발생한 일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재편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우리 배터리 시장에서 주요 부품(Battery components)에 대한 탈중국 및 내재화는 상당히 진행이 되어 있는 상태라 생각된다. 해당 법으로 인해 수혜자가 될지 아니면 피해자가 될지는 ‘미국 내 생산’ 여부에 달려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GM과 합작 배터리 생산법인인 ‘얼티엄셀즈(Ultium Cells LLC)’를 설립, 오하이오공장을 가동중이며, SK온 역시 조지아공장과 테니시주와 켄터기주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건설중에 있다. 삼성SDI 역시 다국적 자동차회사인 스텔란티스와 함께 인디애나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법 집행의 유예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 일본 역시 이와 같은 보호무역주의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윤대통령의 순방 및 우리정부의 대응은 외교적은 물론 전략적 대응 역량을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처음부터 잡음과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