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경제냐 안보냐? 중국과 '거리두기'는 이제 그만

2022-10-20 06:00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최근의 세계 경제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중국 포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그리고 경기 침체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중국 압박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트럼프부터 시작된 미국의 중국 무력화 전략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IPEF(인도태평양경제동맹), CHIP4(반도체동맹),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미국의 경제통상 정책 시리즈는 중국 공격 일변도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선 것은 중국 성장의 반증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국제 네트워크 정책, 2025 중국 제조업 발전 등을 추진하면서 세계 넘버원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제20차 중국공산당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에 필적하는 인물로 등극하였다는 평가이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선부론(先富論)에 묻혔던 마오쩌둥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다시 내세우고 1949년 중국 건국 후 첫 번째 100년(2049년)까지 미국을 제친다는 목표를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할 시 주석은 미국에 맞서 강력한 반격을 시도할 전망이다.
 
둘째, 코로나 극복을 위해 각국은 큰 폭의 재정지출과 양적 완화를 하였다. 이제 인플레이션 수습책으로 미 연준(FRB)이 금리 인상에 앞장섰고 다른 나라들도 방어적인 금리 인상을 하고 있다. 2007~2008년도의 미국발 서브 프라임모기지 사태는 국제금융위기로 확산되었다. 이번에도 출발은 미국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다른 나라의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고금리 정책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를 초래하고 있지만 위기에 믿을 곳은 미국밖에 없다는 제1 기축통화국의 장점을 바탕으로 미 달러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벌여놓았지만 손해는 다른 나라들이 보는 형국이다.
 
셋째, 세계 경기 침체가 뚜렷한 가운데 보호무역은 확산되고 있다. IMF는 내년 세계경제 성장을 금년 3.2%보다 하락한 2.7%로 전망하였고 WTO는 세계무역 성장을 금년 3.5%, 내년에는 1%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경제 성장도 내년 2.3%로 금년 2.5%보다 낮게 전망되고 있다. 1980년대 소위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엔고)로 대외 의존이 높은 한국 경제가 호황을 맞이하였다. 지금은 그 반대로 우리 경제에 불리한 3고 현상(고금리, 고유가, 고달러)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그간의 중국 유화적 기조와 달리 미국의 중국 거리두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한때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제 안미경미(安美經美), 안경동행(安經同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마저 중국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는 다소 가벼운 주장이다. 언론에서도 미국의 이야기와 달리 중국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미국과 중국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국의 일부 정치와 제도적 측면이 보편적 상식과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와 시장은 구분되어야 한다. 민주사회의 여론은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국면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기보다 찬반 의견이 자유롭게 균형을 잡는 게 좋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으로 가장 타격을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경제와 안보 문제로 두 나라에 매여 있다. 1980년대 대미 수출은 우리 총 수출의 30%까지 차지하는 등 2002년까지 미국은 한국의 제1위 수출대상국이었다. 한국의 대중 수출은 1992년 9월 한·중 수교 직후 제로(0%)에서 1993년 단숨에 6%를 기록하여 대 홍콩 수출까지 합하면 14%로 대일 수출과 공동2위를 기록하게 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도에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한국 수출 대상 제2위로 올라섰고 2003년도에는 한국의 제1위 수출 대상국이 된다. 금년도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23% 수준으로 제2위 대미 수출 16%의 1.5배이다. 한때 30%에 달한 대미 수출 비중이 최근 10%대로 감소한 것은 대미 완제품 수출보다 대중 중간재 수출이 유리한 국제분업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중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대중 수출은 2022년 4월부터 9월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간재 수출기지였던 중국이 설비투자와 기술을 높여 한국산을 중국산 등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와의 기술격차는 수년 내에 대등한 수준까지 좁혀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의 월별 무역수지는 적자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적자의 원인이 분석대로 에너지 수입액의 일시적 증가 때문이라면 걱정은 덜하다. 그러나 대중 등 우리 수출의 경쟁력 하락에 따라 수출이 둔화되고 미래에 큰 폭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역수지가 중심인 경상수지 적자는 한 나라의 투자가 저축보다 더 커서 발생하는 것이라든가 경상수지 흑자도 결국 미래 수입으로 사용될 것이므로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는 시차에 불과하다는 등은 한가한 이론적 설명이다. 경상수지 적자는 보유 달러의 유출을 가져오고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린다. 수출 부진은 생산 감축과 일자리 감소로 연결된다. 자본재의 꾸준한 수입이 필요한 작은 경제인 한국의 처지에서는 적절한 범위에서 흑자를 내는 게 좋다.
 
2021년 한국의 수출은 중간재 72, 자본재 15, 소비재 12%로 나뉜다. 우리의 중화학 중심의 산업구조, 중간재 위주 수출은 장점이지만 약점도 될 수 있다. 중간재 수출은 그동안 중국이라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중화학 투자에 주력해 온 중국에 대해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력과 연관 산업 등 인프라가 미흡한 동남아 등으로의 수출도 제대로 된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간 우리 정부는 FTA 체결 확대, 해외 마케팅을 통한 시장 개척 등에 주력하였고 무역보험, 코트라의 지원도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첨단 설비투자와 기술력이 중요하다. 열세이던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앞서는 분야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설비확충과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한 때문이다. 우리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 연구개발 자금을 통합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업부, 과기정통부, 중기부 등으로 분산 운영되고 있는 정부 R&D를 통합, 체계적으로 운영해서 중복 소지를 없앨 필요가 있다. 유사한 기술개발 과제가 여러 부처에서 따로따로 진행된다면 예산이 낭비되고 성과가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과 같은 통합공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둘째, 미·중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공공연하게 보조금을 주는 등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정책이 중요한 우리로서는 다행이지만 핵심 분야를 선정하여 앞서 말한 R&D 자금을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인력양성 정책을 개선하여야 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대학의 전반적인 인재 양성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제조업)은 사람 손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등록금 동결 이후 대학들은 유학생을 받아 수입을 보충하거나 정부 지원받는 데 필사적이다. 웬만한 대학의 대학원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많지 않고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은 귀국을 꺼린다. 백년대계 교육이 바로서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넷째, 무역의 주관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수출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 노동, 에너지 정책을 정립하여야 한다.
 
국제정치가 세계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사이에 귀한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경쟁력은 하락하고 있다. 중국은 무역과 투자 측면에서 우리와 사실상 경제통합이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적으로 교류가 많았던 중국. 이데올로기로 한때 멀어졌고 다시 멀어지려는 중국. 하지만 시장은 다르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은 멀리할 상대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해야 하는 파트너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