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 上] 1심만 2년 9개월째..."시대는 변하고, 법원은 정체" 판사의 호소
2022-10-13 15:10
민사 재판 평균 1년...사건 접수 '줄고' 처리 기간 '늘고'
법관 "시대 변했는데...법원 제도‧시스템 속도 못 따라가"
법관 "시대 변했는데...법원 제도‧시스템 속도 못 따라가"
[편집자주] 2년 9개월 전 서울중앙지법에서 3억원대 사기 사건 첫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피해자 A씨는 아직 1심 선고조차 받지 못했다. A씨는 본지에 "피고인이 증인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는데, 컨트롤이 안 되는 것 같다. 피해자는 재판 지연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이 지연되는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두 차례에 걸쳐 재판 지연 실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 글 싣는 순서
① 1심만 2년 9개월째···"시대는 변하고, 법원은 정체" 판사의 호소
② 대법원 '대법관 4명 증원' 추진···법관들이 보는 '효과'와 '한계'는
최근 법조계에서는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헌법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이 지연되는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두 차례에 걸쳐 재판 지연 실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 글 싣는 순서
① 1심만 2년 9개월째···"시대는 변하고, 법원은 정체" 판사의 호소
② 대법원 '대법관 4명 증원' 추진···법관들이 보는 '효과'와 '한계'는
3억원대 사기 사건이 3년 가까이 지연되는 등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형사와 민사 모두 재판 처리 기간이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재판 당사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판사들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재판을 둘러싼 제도와 시스템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3억원대 사기 사건 피해자 A씨는 2020년 1월 소장을 접수했다. 첫 재판은 같은 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그러나 증인 출석 요구와 증인 불출석이 반복됨에 따라 재판은 공전 중이다. 다음 달 18일 속행 공판이 열리지만 재판 불출석을 반복하고 있는 증인이 올지는 미지수다.
A씨는 "피고인이 증인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는데, 컨트롤이 안 되는 것 같다"며 "피해자는 재판 지연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3억원대 사기 사건 피해자 A씨는 2020년 1월 소장을 접수했다. 첫 재판은 같은 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그러나 증인 출석 요구와 증인 불출석이 반복됨에 따라 재판은 공전 중이다. 다음 달 18일 속행 공판이 열리지만 재판 불출석을 반복하고 있는 증인이 올지는 미지수다.
A씨는 "피고인이 증인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는데, 컨트롤이 안 되는 것 같다"며 "피해자는 재판 지연에 대응할 방법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 민사 재판 평균 1년···사건 접수 '줄고' 처리 기간 '늘고'
비단 A씨뿐만이 아니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판사 3명으로 구성된 민사 1심 합의부에서 지난해 본안 사건을 처리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364.1일로 집계됐다. 2020년 309.6일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55일가량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접수된 민사 사건은 2020년에 비해 약 11% 줄었다.
민사소송법은 1심 재판을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형사 재판도 마찬가지다. 1심 합의부 기준 구속 사건은 재판 시작부터 선고까지 138.3일, 불구속 사건은 217일 걸렸다. 2020년에는 각각 131.3일, 194.2일 걸렸다. 지난해보다 형사 사건 접수가 9.38%가량 줄었지만 재판 기간은 늘어난 셈이다.
민사소송법은 1심 재판을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형사 재판도 마찬가지다. 1심 합의부 기준 구속 사건은 재판 시작부터 선고까지 138.3일, 불구속 사건은 217일 걸렸다. 2020년에는 각각 131.3일, 194.2일 걸렸다. 지난해보다 형사 사건 접수가 9.38%가량 줄었지만 재판 기간은 늘어난 셈이다.
■ 법관들 "시대는 변했는데···법원 제도‧시스템 변화 속도 정체"
판사들은 재판 지연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사건 적체 장기화다. 대법관 임명이 지연되면서 대법원 형사합의부는 사실상 운영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기다리고 있는 하급심이 수두룩하다고 판사들은 토로한다.
서울 소재 법원 A부장판사는 "재판을 하다 보면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기를 기다리면서 하급심 재판을 보류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다"며 "대법원에서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준다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하급심도 재판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판사의 재판 의지가 관건인 '장기 미제 사건'도 사건 적체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1~3심이 1년 넘게 선고를 내리지 못한 미제 사건은 2017년 3만5111건에서 2021년 6만7410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소재 법원 B판사는 "사건 적체는 미제 사건이 많아진 데 따른 것"이라며 "항고심에 지금 적체된 사건들이 많은데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처럼 새벽까지 일한다거나 주말에 근무하면서까지 사건 적체를 해결한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또 다른 원인은 판사들에게 동기부여가 없다는 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문화가 자리 잡은 상황 속에서 법관들에게만 초과 근무를 강요하면 안 된다고 판사들은 호소한다. 또 야근이나 주말 수당이 없는 등 법원 제도 또는 시스템에 사기 진작 요인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C부장판사는 "재판 지연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제기돼 왔던 문제"라며 "과거에는 밤 11~12시, 심지어 새벽 1~2시까지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는 등 판사들 희생 하에 재판 기간이 근근이 유지돼 온 건데 이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여러 가지 시대 상황상 재판 유지가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경 법원 D판사는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사라진 게 크다"며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등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법원 A부장판사는 "재판을 하다 보면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기를 기다리면서 하급심 재판을 보류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다"며 "대법원에서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준다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하급심도 재판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판사의 재판 의지가 관건인 '장기 미제 사건'도 사건 적체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1~3심이 1년 넘게 선고를 내리지 못한 미제 사건은 2017년 3만5111건에서 2021년 6만7410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소재 법원 B판사는 "사건 적체는 미제 사건이 많아진 데 따른 것"이라며 "항고심에 지금 적체된 사건들이 많은데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처럼 새벽까지 일한다거나 주말에 근무하면서까지 사건 적체를 해결한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또 다른 원인은 판사들에게 동기부여가 없다는 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문화가 자리 잡은 상황 속에서 법관들에게만 초과 근무를 강요하면 안 된다고 판사들은 호소한다. 또 야근이나 주말 수당이 없는 등 법원 제도 또는 시스템에 사기 진작 요인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C부장판사는 "재판 지연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제기돼 왔던 문제"라며 "과거에는 밤 11~12시, 심지어 새벽 1~2시까지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는 등 판사들 희생 하에 재판 기간이 근근이 유지돼 온 건데 이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여러 가지 시대 상황상 재판 유지가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경 법원 D판사는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사라진 게 크다"며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등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