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안 보이는 영국, 데드라인 째깍 "2008년 위기 직면"
2022-10-13 15:42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시장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긴급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14일 종료하겠다고 못 박았다. 궁지에 몰린 영국 연기금들이 대규모 자산 매각에 나서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 것이란 공포가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BOE는 이날 두 차례에 걸쳐서 45억6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장기 국채와 물가연동채를 사들였다. 이번 시장 개입 후 총 매수 금액은 130억 파운드 이상으로, 역대 최대 매입 규모다.
국채 매입 종료에 대한 공포에 시장이 영국 국채 매도에 나서며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장 중 한때 5%를 넘겼다. BOE가 이를 진화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며 금리가 4.7%대로 내려갔지만, 14일 이후부터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베일리 총재는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촉발된 영국 연금 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국채 매입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연금 업계는 국채 금리 급등이 유발한 국채 기반 파생상품(LDI)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로 자산을 대거 매도해야 할 처지다. 영국 연기금들이 모든 종류의 자산을 대거 팔아 글로벌 채권 시장 전반을 뒤흔들 것이란 공포가 커지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위기 가능성을 우려한 영국 연기금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연금 업계는 쿼지 콰탱 재무부 장관이 중기재정전망을 발표하는 10월 31일까지만이라도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연장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BOE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고통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가 지속 악화하면 영국 가계가 2008년에 겪었던 부채 상환 부담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다. BOE의 금융정책위원회(Financial Policy Committee)가 이날 발표한 분기별 재무정책 요약 보고서는 “일부 가계는 금리인상으로 생필품 비용의 증가를 관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가계가 전반적으로 2008년 때보다 강력한 위치에 있지만,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생계비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머니팩츠그룹에 따르면 영국 5년 고정 모기지 평균 금리는 6.29%로 200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수입 역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BOE는 짚었다. 금리인상에 따른 높은 비용과 낮은 수요가 수많은 기업, 특히 에너지 가격 급등에 크게 노출된 기업의 수익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영국 자산을 기피하게 되는 상황을 BOE는 경고했다. 연기금들이 레버리지 포지션을 축소해야 할 상황에 놓일 경우 투기등급(하이일드) 회사채와 레버리지론 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영국 정부와 BOE 간 정책 엇박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휴필 BO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막고 정부의 재정 부양책에 대응하기 위해 11월에 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BOE는 11월 3일 금리인상 폭을 결정할 계획으로, 시장은 BOE가 11월에 금리를 최소 1%포인트 올리는 등 현재 2.25%인 기준금리가 내년 5월까지 6%에 근접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투자자들의 재정 악화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해 영국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 감면 조치 일부를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이날 열린 보수당 연례총회에서 감세안을 고수할 것이며, 향후 몇 년간 공공 지출 삭감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